- 3일 동안의 제주 여행, 2019
공항 로비에 들어서며 사라는 시력 안 좋은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찾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그녀는 1초 정도 눈인사를 하고는 바로 체크인 머신 쪽으로 향했다. 오토 체크 인 후 이층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비행기는 30분 지연되어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라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나는 그냥 앞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나한테 화난 거 있나?’ 마치 옆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라를 보면서 괜히 주눅도 들고 무시당한 느낌도 들고 그랬다.
외국 유학을 해서인지 사라가 보통의 한국인들하고는 좀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적응이 안 되면서 조금 언짢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그녀를 만나기 시작했던 어느 날, 그녀가 뭔가를 사 가지고 와서 혼자 먹고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것은 보통 옆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가. 그런데 그녀의 방식은 한국인인데도 딱 외국인, 그러니까 서양인 같아서 무척 낯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그녀와 좋은 사이로 간혹 단 둘이서 만나기도 했다. 최근에 그녀에게 두어 번 먼저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는데, 시골 엄마 집에 가거나 다른 일로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었다.
그때도 나는 '그래. 그런 사정이겠지'하기보다는, ‘내가 만날 때 말을 너무 많이 했나? 뭔가 나를 만나는 것이 마뜩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제주 여행을 함께 다녀와서 든 생각은 똑같이 비용을 나누어 지불하면서도, 난 왜 그녀에게 덤으로 붙어서 여행하는 것처럼 줄곧 주눅 들어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여행에 대한 세부 계획을 세워보지 않은 채 무작정 떠나서, 어떤 것도 제안할 것이 없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수동적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라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먼저 선택권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살짝 그런 마음을 내비쳤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애니, 자기 의견을 명확히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결정대로만 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배려받는다는 느낌을 주기보다 약간 짜증이 나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내 결정대로 했다가 상대가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었을 때는 그것이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잖아.”
맞는 말이다. 이번 여행에 대한 나의 태도가 딱 그런 것이었을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사라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터이다. 나도 누군가가 전적으로 나의 선택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조금 피곤하고 짜증 날 것 같다.
아무 책임감도 없이 누가 하자는 대로만 따라가면 쉽고 편하다. 그러나 때로는 꼼꼼한 준비와 강단 있는 선택으로 ‘이렇게 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이라는 여행도 마찬가지여서 계획과 실행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돌아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는 늘 다른 이들에게 결정을 미루는 그런 수동성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많은 부분 상대를 배려해서이기도 했지만 결국 관계에 임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모호한 입장은 이제 앞으로의 내 행동에서 고려하지 말아야 할, 미덕이 아닌 나쁜 점으로 상정해두자. 그렇게 조금은 극단적인 설정을 해두어야 상대가 이끄는 대로 내맡기는 수동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해주도록 하지 말고 나 스스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