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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Aug 17. 2022

애월의 카약킹 후에는 바에 앉아 노을을 보라

 - 3일 동안의 제주 여행, 2019


  호세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수영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브라질 수영 선수다. 그는 입국 전에 카우치 서핑을 통해 내게 행아웃 친구를 요청해왔다. 그래서 내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픽업하러 나가 대회장 근처의 숙소에까지 데려다주고, 두어 번 만나 식사도 대접했던 친구다.


  해외여행을 할 때 한없이 열려있던 나와 달리, 다시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나는 튕겨나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스프링처럼 마인드가 초기화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비즈니스 고객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소 경직된 태도로 호세를 대하고 있었다. 대회 기간 동안에 즐겁게 어울릴 친구를 기대했을 그는 그런 나를 좀 뜻밖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대회가 끝나고 축하행사가 열리던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났는데 그가 출국 전에 제주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 나도 갈까?" 내 말에 그가 반색을 했지만 말을 뱉어놓고 나니 순간 난감해졌다. 

  둘이 함께 여행을 할 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운 친구사이도 아니고 이런 어색한 기분으로 함께 여행을 이끌어갈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슬쩍 말을 돌렸다. "친구에게 함께 갈지 물어봐야겠다."  


  그래서 사라에게 제주 여행을 제안하며 제주에 가면 호세를 만나 함께 여행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서게 된 제주 여행이고 호세는 오늘 우리를 만나러 이곳 애월에 오는 중이었다.


  좀 전에 더위가 피크를 이루어 괴로웠던 그 지점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는 호세와 딱 마주쳤다. 그는 배가 고프다며 늦은 점심으로 해물탕 같은 것을 원했지만, 사라는 우리가 애초에 가려고 했던 카페를 언급하며 그곳엔 빵밖에 없을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 혼자였다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호세를 위해 당연히 해물탕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갔겠지만, 사라는  자기 의사표시에 주저함이 없었다. 호세가 괜찮다고 해서 우린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로 갔다. 야자수들이 멋들어진 너른 정원에 비해 내부는 이층까지 있었지만 비좁았다. 

   

  사라가 쏟아내는 질문들에 호세는 활기차게 대답을 이어갔다. 사실 내가 전에 모두 물어보고 그가 대답했던 내용들이긴 하지만 그때의 분위기 탓인지, 사라의 활기 탓인지, 호세의 목소리는 크고 활기가 넘쳤다. 나중에 사라가 그랬다.

   "애니 말로는 호세가 말이 없고 조용하다더니, 절대 그렇지 않은데." 


  그랬다. 아마 호세를 만났던 며칠 동안 고객 접대를 하듯 조심스럽게 예를 갖추던 내 태도가 호세를 조용하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몇 차례 호세를 만나는 동안 나는 여행지에서 마주친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평소의 내가 아니었다. 활기를 잃고 의무감에 조금 짓눌린 따분한 중년의 여자일 뿐이었다. 


  우린 셋이서 함께 카약킹을 하기로 했지만 카약킹은 1대당 2인만 가능했고, 호세는 6시까지 자전거를 돌려주러 제주 시내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거기서 수영만 좀 하겠다고 했다.  


  난 수영하는 호세를 동영상으로 찍어주었고, 주변에서 구경하던 꼬마들은 수영선수인 호세의 수영 실력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카약킹 차례가 와서 서둘러 호세와 굿바이 인사를 하고, 사라와 난 구명조끼랑 방수 치마를 두른 볼품없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카약킹을 시작했다.     




 

  노 젓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사라는 자기가 노를 저을 테니, 내게 쉬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바람 때문에 우린 상당히 멀리까지 밀려 나갔는데 돌아올 때는 역풍이어서, 아무리 힘껏 노를 저어도 쉽게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썰물이 시작된 것 같은데 우리 카약은 그 자리를 맴돌고 있어서, 노를 저으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라는 태평하게 즐거워했지만.   

   

  카약킹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어간 해변 카페는 술만 파는 바였다. 바다를 마주 보고 앉아 맥주를 들이키니 천국에 온듯한 기분이다. 그곳에서 한껏 자유로워진 사라와 나는 비로소 도란도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으러, 역시 사라 지인이 추천한 레스토랑에 갔다. 노을 진 바다를 향해 있는 야외 좌석이 너무나 근사했다. 더구나 손님이라곤 우리 밖에 없어서, 마치 우리가 통째로 세를 낸 곳 같아 우리는 환호하며 좋아했다. 게다가 서빙된 음식의 플레이팅도 환상적이어서 우린 한껏 마음이 들떴다. 


  






  사라는 해먹 위에 누워 흔들리며 행복해했다. 

  그녀는 카약킹 이후로 여행이 갑자기 급 흥미진진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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