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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21. 2021

다시 능내역에서

마음이 쉬는 곳



사회적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됐다해도, 양수리로 가는 길은 거북걸음이었다.

물의 정원의 산책이 목표였던 여정을 두물머리로 변경했으나, 양수리는 그야말로 도로가 

주차장이었다.

용케도 돌아나와 갈 수 있었던 곳이 능내역이었다.


폐역이 되기 전, 나는 꼭 한 번 이 역을 지나갔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경주로의 수학여행을 우리는 중앙선의 도농역에서 기차를 탔었다.

그리고 기억에 중앙선기차를 탔던 기억이 없다.



폐역의 교량 한 칸이 카페로 쓰였었나 보다.

지금은 문을 닫았다.

초가을, 수크령 한 무리가 기차를 에워싸고 있다


어느날 동생들이 말했다.

경주를 다시 가고 싶다고.

나는 며칠을 머물며 담양의 관방제림을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동생들은 담양의 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차를 타지는 못한다.빠르고 신속하게 어디든 다녀와야 하니까


경주의 수학여행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차마, 부모님이 준 용돈으로 선물코너에서 

소꼽놀이를 2세트 사온 걸 말하지 않았다.

순전히 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기억하는데, 이애들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

선물이란 어쩌면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깊이 기억할지도 모른다.

선물을 사기 위해 바친 마음과, 마음을 쏟은 시간에 그 사람의

진정한 정성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소풍을 가면 준비해간 간식을 꼭 남겨왔다.

심지어  김밥까지도 남겨왔던 것 같다.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동생들이 좋아하는 게 좋았나 보다.아무도 배탈이 나지 않았다.



어려운 시절임에도 아버지는 집에 오실 때 꼭 간식을 사오셨다.

특히 큰 딸이 뭐가 먹고 싶다하면 과하게 사다 주었다.

라면을 끓여 먹으면 다음 날 한 박스를 사왔다.

그런게 좀 슬펐다.

작은아버지들 말을 빌리면, 우리 아버지는 일을 안 해도 혼자 쌀밥을

먹었다고 했다.

몸이 약한 게 이유였는데, 그런 아버지가 그 많은 식솔을 거느리느라

얼마나 힘겹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겠는가 싶다.


집에 들어갈 때 무언가 먹을 것을 가지고 가는 

나의 그 버릇도, 부모를 흉내 낸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노래도 잘 불렀고, 친구들과 더불어 여행도 자주 다니셨다.

선생님이 가수를 하라고 권유했다는 말을 하곤 했다.

1년에 두 벌씩 양복도 맞춰 입었다. 

넥타이를 사다드리면 좋아하셨다.

특히 좋아한 넥타이는 청량리 시장에서 산, 화려한 색색의 물감을 흩뿌린 듯한

추상적인 무늬의 것이었다.


기차역이 있는 동네에 살았지만, 한 번도 기차역에서 누구를 기다린 적이 없다.

큰 집의 오빠가 회사에 취직하기 전, 양평 쪽을 다니며 장사를 한다고 했다.

돈을 버니 가끔 용돈을 주고, 집에서 놀다 갔다.

유쾌하고 쾌활하니 장사를 잘했을 것이다.

그 오빠도 이 역을 거쳐서 양평이며, 아신이라는 곳을 갔겠지.


인정 많던 오빠는 덕소의 극동전선을 오래다니다가 회사가 청주로 이전을 하자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오빠가 아프다는 소식에 나는 무작정 전화를 걸어 '왜 아프냐'며 울기만 했다.

멀쩡해진 오빠를 다시 봤을 때, 이제 내가 용돈을 드렸다.

그게 당신들 생각에 넘쳤던가, 온 집안에 소문이 퍼졌었다.

남동생은 사법고시생 아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고모를

도와드리라고 했다.

올케언니도 나를 보면 그때의 이야기를 하니 어디 쥐구멍이 없나

찾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오빠가 용돈을 주면 나는 <삼중당문고>의 책들을 샀다.

1970년대 였으니까.



빗방울이 떨어지자

주말이 되면 교통지옥이 되는 이 주변을 벗어날 일이 걱정이지만,

용감하게 돌아나온다.

폐역이 된 이 역처럼,

아직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떨쳐내지 못한 자국이

반갑다.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폐역엔 

그리움도, 기다림도,

한 줌의 눈물을 던져 넣을 난로는 없지만

그리웠던 순간들은  박제가 되어 저 담쟁이 마른잎처럼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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