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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20. 2021

런던포그가 있는 출근길

기억의 서랍을 꺼내며


그가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벗어서 시렁에 얹으려는 찰나
 살짝 뒤집힌 옷자락에서 런던포그 상표가 드러났다.
세련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박완서 <마른꽃>


십 년이 넘어 한국에 온 친구, 진수는 인디언 핑크 트렌치코트를 왼쪽 팔에 걸치고 있었다.

개켜진 깃 위로 <런던포그> 상표가 보였다.

우리는 4분의 4박자로 걸음을 맞추며 나란히 걸었다. 

그녀는 한국에서처럼 머리가 길었고, 그동안 변한 한국의 상황을 고까워했다.

미국 시민으로서 원하는 한국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만은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맞닿아 있었다.

1992년이었고, 그녀의 집은 뉴욕의 변방 버팔로였다.



친구의 남편은 미국인이었다.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나라라는 이유로

부자나라의 바보같은 남자는 한국의 똑똑한 인재를 아내로 맞았다. 


친구네집은 가세가 기울대로 기울었지만 자립할 능력이 안되었다.

그래도 머리손질은 명동을 고수했고, 일류 브랜드가 아니면 옷을 사지 않았다.

꿈의 땅 미국을 가고 싶어했다.

친구의 친구 중에 가난을 면하고 싶어, 돈을 주고 미군을 소개받아 데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미국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 남자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했으니까.

내 친구가  친구 통역사로 나갔다. 3인이 데이트를 하는 괴상한 풍경이 우스운데, 미국남자는 말이 안 통하는

여자보다  영어를 좀 하는 내 친구와 사귀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내 친구는 소개비를 자기 친구에게 줘야 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미국가면 주겠다며 동두천에 가서 남자와 함께 살았다.

친구가 떠나갈 즈음에 나는 테너 신영조 교수가 부르는  박재삼 작시, 김연준 작곡의 <임의 초상>을 닳고 닳도록들었다. 테잎을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도자기를 사주었고, 고향생각 나면 보라고 봉숭아 씨앗을 함께 주었다.

신영조 교수의 <임의 초상>은 절창이었다. 남들이 <목련화>를 부르는 테너 엄정행에 취해 있을 시기,

나는 신영조의 미성에 허우적거렸다.

그의 목소리로 <임의 초상>을 이제  들을 수 없다.

찾아도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네가 좋아하니 이건 그냥 너 가져, 그리고 봉숭아 씨는 통과가 안될거야"하며 테잎을 돌려 주었다.

나중에, 미국에는 우리 것보다 예쁜 꽃이 피는 봉숭아가 있더라며 사진을 보내주었다.

 

출근할 때, 사릉 시내 외곽으로 뻗은 전용도로를 사용한다. 이 길에서 우회전을 하여 용정사거리로 접어들면, 구효서 작가의 집필실이 있던 주공아파트가 나온다. 용정사거리엔 작가가 오며 가며 마주쳤을 <이용분 미용실>이 퇴색된 간판을 이고 있다. 그의 집필실은 이제 없다.


새로 생긴 전용도로 옆으로 의류 할인매장이 있다. 경기 탓에 의류매장이 폐업하고 다른 업종들이 들어섰지만 <런던포그>는 아직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런던포그> 간판을 보며 친구를 생각하고 박완서 작가의 <마른 꽃>을 생각한다.


출근 길 여건에 따라 저 런던포그는 내 눈에 뜨일 때도 있고, 무심히 지나칠 때도 있다.

오늘은 저 간판이 정면으로 눈을 가렸다. 길 위에 차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정조카의 결혼식을 위해 지방 도시를 갔지만, 자신은 조카들의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다. 하루 주무시고 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돌아갈 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사치레라도 그런 말이 없다. 괘씸하고 섭섭하다. 참담한 고독감까지 이어진다. 할 수 없이 취소 버스표를 두 장을 사고 말았는데, 한 표를 사 준 신사분이 ‘아콰마린’ 알반지를 끼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앉아 서울로 올라 온다.


처음에 나는 그의 손밖에 보지 못했다. 반지 낀 손이었다.
 백금 반지에 박힌 깊은 청남색 돌이 '아콰마린'이라는 걸 단박 알아보았다.
비싼 건 아니지만 흔한 돌도 아니었다


 

온라인 속의 내 별칭은 ‘아쿠아마린’이고 내게도 백금에 알이 박힌 ‘아콰마린“ 목걸이와 팔찌가 있다. 런던포그와 아콰마린에 풍덩 빠지고 만 나는< 마른 꽃 >속 노년의 연애를 응원했다(겨우 환갑인데 지금은 노년도 아니다. 이 단편은 1998년 발표되었다.)


회갑의 여인이 목욕하다 말고 알몸으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작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아랫배는 처참했다, 볼록, 아랫배는  나왔고, 비튼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있었다.

자신의 실체를 본 것이다. 

 

상대 남성은 대학교수였고, 박사다. 자신의 노골적인 몸을 마주한 순간 상대 남자를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그와 나 사이엔 정욕이 없다. 

여인이 생각하기에 남녀사이의 정욕이란,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정욕 사이에서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 한 사이가 아니라면 늙은 육체는 한갖 혐오덩어리 일 뿐. 가차 없는 늙음의 속성이 서글프다. 캬악 기를 쓰고 뱉어내는 가래소리를 무람하지 않게 듣고 봐 줄 사람은 짐승스러운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이라고 믿는 순간. 

여인은 멋쟁이 신사와의 미래를 접는다.




내게 이 단편은 <런던포그>와 <아콰마린>을  잊지 못하게 했고,

<짐승의 시간>이  얼마나 생명력이 있으며, 인간적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정욕'이란 것의 아름다운 단면을 생각케 했다.

아콰마린 팔찌를 착용 안 한지 몇 해가 흘렀다. 


아콰마린은 '정욕'과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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