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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18. 2021

설원의 은빛여우 그녀,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겨울,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신작 취재차 편집자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로 갈 예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베리아는 낭만과 상상의 땅이었다. 광활한 설원과 자작나무 숲과 썰매 개들이 질주하는 겨울 왕국..... 조선일보에서



‘아는 만큼 보이다’고 했다. 이 진리를, 일하면서 싸드락 싸드락 배워가는 나는, 이보다 명확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사무실 앞을 수만 번도 더 지나갔을 동네 주민 얼굴이 나와 계약관계로 이어지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그제서야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많은 무리 속에서 그 사람 외에는 모두 아웃 포커싱이 되는 현상이 우습다.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나는 무엇을 봐왔고, 무엇을 생각하며 이 동네를 지나다녔는지, 어떻게도 설명이 안 되는 미스터리니까.


신문에 실린 정유정 작가의 글이 이제야 눈에 번쩍 띈다. 평소라면 이 작가는 내 사무실 앞을 무심코 스쳐 가는 나그네나, 어린 왕자가 지구에서 만났던 장미 송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작가를 나는 몰랐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발표되는 기사에 콧방귀도 안 뀌는 나다. 그런데 며칠 순위를 보게 된다. 그것도 일부러 찾아본다. 이유는 독서모임의 일원인 박태외 작가가 책을 냈기 때문이다. 내가 베셀 순위를 찾아서 살피고 있을 때, ‘나, 여기 있어’하고 손을 흔든 책이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행복‘이 손을 흔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순전히 착각이다. 그 책도 나와 관계가 맺어지자 비로소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했던 거다. ’ 완전한 행복‘은 이미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8월에 읽기로 약속한 책이기 때문이다.



출처 © r3dmax, 출처 Unsplash


‘블라디보스토크가’ 블랙홀처럼 나를 휘감으며 눈에 박힌 건, ‘완전한 행복’ 속, 유나의 두 번째 남편이 될 차은호가 그녀를 처음 본 곳이  블라디보스토크 비행장이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은호 앞을 스치는 유나는, 정유정 작가가 찾고자 했던 설원 위의 ‘은빛 여우’였던 것은 아닐까. 야성적인 푸른 눈빛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외모로 상대를 홀리는 여우 말이다. 작품을 읽고 나니 요사하고 요망한 유나의 꼬리에 제대로 놀아나다 정신을 차린 어리석은 선비 같다. 유나의 조정에 사랑과 애증의 굴레를 넘나드는 은호는 마리오네트다. 금빛 눈 반짝이며, 이국적 매력을 자작나무 숲 설원에 뿌리던 여우는 나르시시트,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여인이었다. 인생에서 때로 황홀한  큐피드의 화살은 독을 묻힌 채 매혹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설원에서 고혹적인 눈빛을 하고  은호의 삶 속으로 질주해 온  유나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나면 멘탈이 나가버리는 유미는 행복은 
덧셈이 아니고 뺄셈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나르시시스트를 컨는 용어지만
모든 나르시시트가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성장 과정에서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며, 자신은 대단하고 훌륭하고 완벽한 사람인데 남들이 몰라준다는 식으로 방어기제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자기가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투사(projection) 하거나 자기합리화(rationalization)를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며, 심한 경우 지속적인 기만과 조건화로 상대방을 현혹시킨다(가스라이팅; gaslighting). 타인과의 애정관계에 대한 정서적 발달이 부족하다 못해 인간에 대해 내면에 깊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네이버에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어떤 사건이 떠올랐는데, 작가는 이 사건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작품은 ‘실제’가 아니며, 플롯을 비롯해 인물과 배경, 서사가 소설적 허구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매스컴에 오르내린 ‘어느 인물’이 유령처럼 눈 위를 떠다니는 현상은 그만큼 사건이 끔찍했고, ‘완전한 행복’이 가슴을 졸이게 했기 때문이다.


‘완전한 행복’을 덮은 순간, 가장 눈에 밟히는 인물은 유치원생, 힘없는, 엄마의 가스라이팅에 시달리는 지유였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어린 영혼은 연약하고, 무력하고, 의지할 곳 없이 엄마의 시선 속에 머물기를 염원한다. 버림받는 공포에 몸서리를 치는 아이의 서늘한 웃음은 비굴하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적  슬픔이 얼마나 비극적이며, 무기력한가를 보여준다. 이 장치는 독자의 눈을 일제히 ‘지유’의 구출과 ‘행복’한 세계로의 진입을 응원하고 기대하는 염원으로 뭉쳐 놓았다. 


작가는 말한다.'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아이의 양육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할 말이다. 가정에서 특별한 대우 속에 자란 아이가 헤쳐 나가야 할 세상은 부모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아니다. 부대끼고, 절망하며, 무너지고, 일어서야 하는 늪지다. 눈물도 자비도 없는 사회와 더불어 싸워 이기는 힘은 '특별한 존재'로 추앙받아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나르시시트가 많은 세상을 상상해 보자. 자존심은 강하나 자아가 없는 '유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특별함만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괴물이었다.


‘지난밤 지유는 간간이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면 곧장 고통이 몰려왔다. 그때마다 아빠 인형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순간의 실수, 들키지 말았어야 할 일을 들켜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 엄마의 믿음을 잃었다는 슬픔과 후회, 그와 별개로 점점 짙어지는 의심과 그로 인한 죄의식, 다가올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도 이런 두려움에 떨었던 시기가 아니었다 싶다. 부모에게 잘 보여야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그들로부터 분리되는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나름 부모의 눈에 들게 행동을 했을 것이다. 태고 시절부터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생존본능이었겠다. 성장이 끝나지 않은 인간에게 부모의 그늘은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받는 유일한 요람이었을 테니까.


어릴 때부터 엄마의 꾸지람에 "아버지, 아버지’하고 울어서 엄마를 섭섭하게 했던 나도 낮잠을 깬 후 엄마가 없으면 통곡을 하고 울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미용사의 손으로부터 엄마를 보호하고 싶어 엄마 무릎에 엎드려 냅다 울어댔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아마, 분리불안이었을 것이다.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내 곁으로 와, “엄마를 쫓아내고 우리끼리만 살까?” 아버지의 속삭임에 화난 얼굴로 대꾸를 안 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나는 최고의 육아 방법은 아이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지 않기’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요인 앞에서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너를 보호할 거야’라는 메시지는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만큼 힘이 되는 부모의 선언이라고 믿는다. 흔들리지 않는 지원과 변덕이 없는 부모의 응원은 아이에게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된다. 경제적 상황, 사회적 지위, 학력의 고저를 떠나 아이를 향한 정신적 지원은 아이의 튼실한 뿌리 뻗기의 토대다.


지유의 현실이 슬펐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모의 손을 잡고 러시아로 떠난 ’지유‘가 설원의 은빛 여우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달 늪의 '되강 오리'에게 줄 먹이를 만드는 소설의 첫 페이지는 전개될 사건의 끔찍성을 암시한다. '되강 오리'는 괴기스러운 울음소리를 가졌지만, 멀리서 새끼를 지켜보는 습성을 가진 조류다. 새끼가 위험해 처했을 때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낸다. 반달 늪의 상징은 두말할 것 없이 유나다. 반달 늪의 정체를 안 '되강 오리'는 '지우'의 꿈에서조차 경계의 사이렌을 멈추지 않는다.


                                                <신간인 만큼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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