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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18. 2021

닭모이 통의 새하얀 쌀

기억의 서랍을 꺼내며


퇴근하여 마당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면 풀밭의 온갖 벌레소리가 몰려온다. 햇살의 기울기가 완만해진 절기의 아침 저녁 공기는 여름 옷의 성긴 구멍 속으로 서늘하게 파고든다. 가족이 왔다고 현관에선 다섯마리의 반려견들이 일제히 기척을 준다.


 바퀴소리만으로도 가족을 알아채는 이 녀석들의 옹알이에 근본없이 하늘과 땅을 감싸던  온갖 곤충들의 울음이 잠시 묻힌다. 마당 한쪽에는 김장용 배추 모종판이 놓여있다. 감자를 캐고 비어 놓은 밭고랑이  가로등 아래서 훤히 빛난다. 배추 모종이 심어질 자리다. 비닐끈으로 나포되어 일렬횡대로 서 있는 고추는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배추와 함께 우리 가족들 김장거리다. 집 뒤 90평 창고 옥상은 고추를 말리기 안성마춤이다.    


마당 한쪽에 닭장이 있다. 살구나무 곁이다. 닭장 안에는 일반 닭보다 덩치가  작은 일명 화초 닭 몇 마리가 있다. 어머님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 녀석들이 낳아 놓은 탁구공만한 계란을 수거한다. 푸성귀를 모아 잘게 썰어 사료에 버무려 먹이를 만들고, 물을 갈아주며 정성을 다한다. 나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달걀을 모아서 아이들에게 보낸다. 봄이면 알을 품은 어미 덕에 병아리를 보기도 한다.




여동생이 텔레비전에서 화초닭을 보았던 모양이다. 대전에 있는 막내 동생 딸에게 저런 닭을 선물하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다. 오래전 일이다. 두 마리를 기십 만원를 주고 사 놓았다. 조카가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하며 나름 얼마나 신났을 것이며, 혼자 얼마나 미소를 지었을까 싶다. 



혼자만의 행복이 산산조각이 난 것은, 이들이 선물을 보고 난 후였다. 막내동생은 기가 막혀 하며 “언니, 이걸 아파트 베란다에다 키우란 말이야? 다들 자는 새벽에 닭이 울면 이웃사람들 잠을 다 깨우잖아!" 했단다. 대전 동생 얼굴엔 짜증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닭을 사 놓고 기대에 부푼 그녀의 상상은 일순 걱정거리로, 근심거리로, 형제들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화초닭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새벽이면 이 녀석들은 작은 체구로 홰를 치며 제법 큰 울음을 뽑아냈다. 먼 공간을 가로질러 어디선가 응답용 닭울음이 들려오는 시간은 새벽 3시쯤이 된다. 살구나무 옆의 흉물스러운 닭장이 나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어머님은 겨울에 녀석들의 보온을 위해  비닐로 닭장을 꽁꽁 싸맨다. 눈엣가시지만 우리는 당신의 기쁨이겠거니 하며 신경을 안 쓴다.


내 어린 날, 우리집에도 닭장이 있었다.


중학 2학년 시절, 어느 봄날이었다. 얼마나 곤히 잤는지 눈을 뜨니 집안은 고요했고, 봄햇살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마당도 봄햇살 천지였다. 마당 구석에 자리한 닭장의 닭들이 햇살을 벗 삼아 눈을 또록이며 꼬꼬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잠에 취했던 나는 우두커니 닭장 앞에 앉아 있다가 그네들이 배고플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철망 앞에  매달린 삼각뿔 모양의 긴 모이통에 쌀을 퍼다  주었다. 정신없이 쪼아 먹고 있는 닭들을 보면서  행복했다. 모이통이 순식간에 바닥났다. 또 퍼다 쪼르륵 먹이통을 따라 뿌려 주었다. ‘이렇게 잘 먹다니, 너희들 금세 크겠구나, 많이 많이 먹거라!’ 





닭들은 모이통에서 멀찌감치 떨어지는데 나는 안채를 들락거리며 쌀을 갖다 주었다.


 새하얀 쌀이 수북하게 쌓였다. 쪼그려 앉아 넋 놓고 닭들을 바라봤다. 엄마는 냇가로 빨래를 갔던 모양이다. 엄마 기척이 나더니 대문이 열렸다. 빨래 대야를 내려놓다가 닭장 앞에 하얗게 빛나는 쌀을 본 엄마의 몸이 성난 황소같이 움직였다. 


기운 없이 앉아 있는 나를 향해서였다.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문을 열려는 엄마의 힘찬 시도는 맥없이 끝이 나고, 귀한 쌀을 닭 모이로 준 내 철없음을 문 앞에서 성토했다.


 입에 욕을 담아본 적 없는 엄마는 아마도, 문 앞에서 '요년, 요년!'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집에 없겠다 뭐, '조년,조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화를 낸 엄마가 야속해 밥을 안 먹었다. 의붓엄마도 아닌데 , 철없는 나는 분명 '아버지만 와 봐라' 별렸을 게 뻔하다.


 엄마에게 쌀은 욕망의 끝 지점에 놓인 귀한 것이었다. 가난한 시절의 하얀 밥은 부의 상징이었고, 한 번쯤 원 없이 먹어보고픈 갈망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하얀꽃이 피는 나무를 쌀밥을 상징하는 ‘이팝나무’라고 명명하였겠는가!. 조밥처럼 하얀 꽃이 핀 나무를 ‘조팝나무’라고 하였겠는가! 배고픔의 설움이 몸에 밴 당신 앞에, 하얀 쌀을 뿌려놓고 앉아 있는 ‘속없는 큰딸’이란 것이 얼마나 한심했을까. 쌀 한 톨을 허투루 흘리지 않는 알뜰함의 이면에 배고픈 시절의 아픔이 있다는 걸 알지만, 동조는 못했던 나. 쌀의 귀함을 몰랐다.



 어린 날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마당을 서성이는 유월의 밤 위로, 밤꽃 향기가 숨을 죽인다.

그 시절, 우리집 닭장의 닭들은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을까?

닭들이 사라져 간 자리에 우리는 금잔화를 심으며 깔깔댔다. 

그렇게 우리는 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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