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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16. 2021

말벌에 쏘인 자리와 영혼의 상처

친구를 생각하며



내 친구는 남편이라는 강한 바람에 시달리고, 감정적으로 억눌린 채 살아간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 낸 가문비나무가 바이올린으로 만들어졌을 때, 축복받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녀의 울림은 아름답다. 타고난 고운 음성에, 꾹꾹 눌러 낸 인내가 융합된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부르는 자장가를 닮았다. 그렇게 포근하고 시끄럽지 않은 고요함이 있다. 폭풍우 같은 삶이, 감정적으로 억압된 자유가, 다행히 목소리를 앗아가지는 않았다. 영혼이 좀 먹는 갈등의 세월에도 온전히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의 존재였다. 



아들은 언제나 친구를 응원한다. 그녀의 독립을 진실로 원하는 사람도 아들이다. 엄마의 삶을 생생하게 봐 왔고, 누구보다 아버지의 성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변할 수 없는’ 아버지임을 어린 시절부터 터득한 아들에게 엄마는 자신을 위해 희생양으로 바쳐진 재물이었다고 생각하리라. 친구에게 아들은 무한한 힘의 원동력이다. 현실을 이기고, 접힌 날개나마 은밀하게 펼쳐보는 꿈을 꾸지만 늘 허사로 끝나고 만다.


친구가 설명하는 남편의 행위는 날 질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젊었을 때 왜 헤어지지 못했어?”


“그럴려고 가출도 했었지. 남의 집에 가 있기도 했어. 엄마가 말리더라. 내 아들을 내 남편처럼 만들기가 싫기도 했지. 그리고 내가 용기가 없었어.”


요새, 친구는 남편을 ‘성격파탄자’라 일컫는다. 나도 동감이다.


친구가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눈치를 봐야 한다. 허락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은 간이 커져서 ‘통보’만 하고 외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하겠는가!. 간혹 나를 만난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친구 남편이 고맙게도(?) 나와 만난다고 하면 가장 순순히 보내주기 때문이다. 그녀의 외출은 해방의 순간이기도 하다. '집이 아니면 모든 곳이 천국이' 이라는 그녀는 좋은 가정의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다. 세상 이치에 거슬림이 없으며, 반듯하고 영리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척박함을 무릅쓰고 자란 겨울산의 가문비나무다. 좋은 악기의 재료가 될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주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니 친구의 전화가 와 있었다. 밤이었다. 이건 집에 남편이 없다는 표시다. 아니면 밖에 나와 저녁 운동을 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시간이 흘렀으나 전화를 해 봤다. 다행히 친구는 외부에 있었다. 남편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이번엔 친구가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많은 수다가 오갔다.


종잡을 수 없는 여자들의 수다가 오간 후, 친구가 지인의 이야기를 했다.




지인의 남편이 밭에서 말벌에 쏘였단다. 순간 아내는 고민을 했다. 119를 불러야 하나, 평소 꼴보기 싫은 남편인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 마음은 그렇게 먹어도 악독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지고 볶으며 원수처럼 살아도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은 여태 미웠던 악감정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게 가족사이에 흐르는 정이 아니겠는가. 미운 정도 정이다. 아내는 부랴부랴 119를 불렀고, 남편은 무사했다. 어려운 일이 폭풍처럼 지나고 남편의 깐깐한 성격이 돌아오자 아내가 후회를 했다.


‘119를 부르는 게 아니었어’.


내가 말했다. 


“말만 그렇지 사람이 그렇게 못 하지!. 그리고 말벌에 쏘인다고 사망에 이르지는 않잖아.”


“아니야, 내 말 들어 봐.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밭에서 또 말벌에 쏘였대. 혼자 가셨을 때인데 


정말로 돌아가셨어.”



지인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인사를 건넸단다.


“얼굴이 좋아지셨습니다!”


“네! 아 글쎄, 우리 남편이 돌아가셨잖아요.”


그녀는 본심을 쏟아낸 후, 쓸어 담지 못할 말이 후회스러운 게 아니라 농담의 주제로 여기저기에 은밀히 전파 중일 것이다.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 본심이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흘러 나왔단다. 아내들은 가끔 남편이 죽어주는 소망을 갖기도 한다. 죄스러워서 감추지만, 남편의 의무가 끝난 뒤  사망하면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깐다고도 했다. 그러나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중개를 하기 위해 이 집 저 집 물건을 보러 다니는 게 직업인 나도 말벌에 쏘인 적이 있다. 수리는 해 놓았지만 외딴집이다 보니 오래 비어 있었다. 다가구주택의 꼭대기 층이었다. 무심코 현관문을 열었는데 밖에 달려 있었던 말벌집이 떨어지며 난리가 났다. 사람 출입이 없다보니 말벌들이 현관문 위쪽에 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뭔가 툭 떨어지더니 무시무시한 것들이 집단으로 나를 공격해댔다. 처음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저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아랫집 할머니가 놀라서 올라오셨다가 피하라는 내 말에 허둥거리며 집으로 들어가셨다. 달아나는 나를 표적삼아 말벌들이 쫒아왔다. 도망쳐도 이들의 추적은 흩어지지가 않았다. 집단 동물의 단결된 힘이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지만, 급히 마당에 세워놓은 차 안으로 들어가서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까지는 15분 거리였고, 가을로 접어드는 철이었다. 팔이며 목덜미는 포탄을 맞은 것처럼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벌에 쏘인 지 몇 분이나 되셨어요?”


“15분 정도 됐을 거예요” 


“오시면서 숨이 차거나 몸이 이상하지 않던가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주사를 맞고, 상처 부위에 소독을 하고, 처방전을 주면서 의사가 다시 말했다.


“집에 가서 숨이 차거나 이상 반응이 있으면 응급실로 오셔야 합니다. 사망할 수도 있어요.”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할머니는 네 방을 쏘였으며, 약국에서 약을 샀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셨으나, 나는 꼭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웃기만 하셨다.


다행히 나도 별 이상없이 지나갔다. 다만, 벌에 여섯 군데가 쏘였으며, 쏘인 부위가 무섭게 부어올랐고, 딱딱해진 자국은 1년 후에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말벌집은 119에서 즉시 처치해 주었다. 



나를 공격한 말벌은 장수말벌이었다. 평소 주위에서 보던 말벌과 달리 황금색 무늬가 유난히 눈에 뜨였으며 우선 크기가 내 새끼손가락만큼 컸다.


장수말벌의 독에는 다른 말벌에는 없는 신경독인 '만다라톡신'이 들어 있어서 알러지가 있으면 매우 위험하다. 게다가 독의 세기도 꿀벌보다 약간 강한수준인데 독낭도 더욱 커서 독 주입량이 꿀벌의 수십 배는 되기 때문에 쏘이면 더 아프고 훨씬 위험하다. 더 강한 독을 훨씬 더 주입하는 셈. 애초에 독이 강하지 않은 종류라 해도 알러지가 있으면 과민반응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게다가 장수말벌은 흥분하면 시속 4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백과사전에서-


 나는 남편에게 억압받는 친구의 영혼이 말벌에 쏘인 몸처럼, 모진 비바람에 적응한 나무처럼, 여기저기 옹이가 맺혔을 거라 생각한다. 늘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은 폭풍우 속에 서 있는 나무 같아서 함께 혼란스러웠다. 남편의 억압과 말벌의 독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무진장한 글거리가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잘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속에 있는 것을 토해 놓으라고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글을 쓴다고...


친구가 언제쯤 자판을 두드릴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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