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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25. 2021

아파트를 매매한  영자 여사는 나를 편애한다.

중개의 현장에서



"오야! 오늘 오이는 미쓰 코리아여! 아주 잘 생겼지야?  잘 먹어."

" 네! 어머니, 오이는 냉국 해 먹고요, 호박은 찌개 끓여서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주차장으로 통하는 사무실 뒷문엔 가끔 뭔가가 매달려 있거나 땅에 놓아둔 무엇인가가 있다.

양이 적은 건, 검은  비닐봉지의 손잡이를 문고리에 걸어 놓는다.

농약 한 방울 안 주었다는 시퍼런 대파가 한 아름 누워있을 땐, 시중에서 말도 못 하게 비싸다는데..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양이 많아 이웃 고깃집에다 인심을 쓰자, 되려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 귀한 걸 받아도 되느냐고..



머윗대 껍질을 벗겨서 놓고 가시거나, 상추, 고추, 오이는 기본이고 고구마 줄거리를 곱게

벗겨서 내려놓고 가신다. 잠이 안 오면 일어나 하릴없이 껍질을 벗긴다고 하신다. 당신 비닐하우스를 가기 위해 나선 걸음이라지만 우리 사무실까진 한 정거장을 더 걸어야  한다. 더구나 영자 여사는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으셨다.

호박죽이나 팥죽을 쑤어서 주고 가시기도 한 영자 여사는 20동이 넘는 비닐하우스를 임대하여 농사를 지으신다.

시금치를 심으면 시금치를 가져오시고, 참나물을 심으면 참나물을 맛보게 해 준다.

햇부추는 사위도 안 주는 건데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떠실 땐, 화순에서 시집온 영자 여사의 고운 티 나는 얼굴에 생기가 차오른다. 하우스 주변에 겹사쿠라가 장미보다 곱게 눈을 뜨면, 재수 없는 가지들은 우리 사무실로 길을 떠나야 한다. 영자 여사의 품에 안겨서 말이다.


영자 여사의 딸은 엄마가 일하는 남의 사무실에 폐가 되지 않을까 단속하기 바쁘다.

우리 사무실에 와 계실 때 따님의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셔?" 

"응, 여기 부동산 놀러 왔다."

딸의 일장 연설이 이어진다. 

영자 여사는 "응, 응, 지랄하네... 알았어."

그러곤 아주 잠시 풀이 죽기도 한다.아직도 눈에 총기가 번뜩이는 영자 여사는 남편의 바람기에 속을 끓였다고 한다.


딸은 가끔 엄마껜 비밀이라고 커피믹스며, 드링크를 사다 주고 급히 떠난다. 서울에서 일부러 들른 것이다.

엄마가 남의 일터에서 주책맞게 수다를 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동네 어른이니 말도 못 하고, 말대답해 주느라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딸의 걱정. 엄마가 어디서 홀대나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는 엄마를 사랑하는 딸의 마음이 보인다.



날도 안 좋고 한가해서 영자 여사가 애용하는 드링크를 사서 오랜만에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이곳은 곧 수용이 될 '왕숙지구'에 속해있다.  농로는 뻘밭이 되어 있었다. 고만고만한 길이라 이길인가 저 길인가

헷갈린다. 몇 바퀴를 돌았다. 전화를 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전화하는 거 죽어라 싫어하는 나는 몸 고생을 하기로 결심한다. 돌고 돌다 보면 나오겠지. 골목을 헤매듯이 진탕인 농로를 헤맸다.

내 기억으로 영자 여사의 농막은 왼편에 있다. 왼편을 열심히 살피며 달린다.




지나다가 하우스 앞에서 농부와 이야기하는 영자 여사를 봤다. 허리 곧기가 어느 여염집 새색시 같지 않은가!

차를 세우고 내리려니 발밑이 곤죽이다.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

"어머니, 이거 받으세요!"

양편에 한 세트식을 들고 구름 속을 걷듯 살랑살랑 걷는 영자 여사의 몸이 날래다.

내 기억과 다르게 영자 여사의 농막은 오른 편에 있었다. 그냥 가겠다는 내게 금방 쪘다며 옥수수를 안겨주셨다.

차 안이 구수한 옥수수 냄새로 그득 찼다. 

여름 내내 옥수수를 쪄서 출근길에 싸 주신 우리 어머니는, 

내가 옥수수를 그리 즐겨 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신다.

그래도 우리 집 옥수수는 찰지고 맛이 훌륭했다. 그 많은 옥수수는 이웃 상가 사람들 몫이 되었다.



뻘밭을 질주한 내 차의 몰골이 처참하다. 

영자 여사는 왜 나를 편애하는가?

오래전, 남편의 병수발로 재산을 다 날린 영자 여사는 월세를 살고 계셨다.

이사를 하려고 월세를 알아보는 중에 우리 사무실과 인연이 이어졌다. 여사는 생각보다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전용59제곱미터(24평형) 아파트 매매를 권유했다. 대출을 받으면 충분했고, 이자가 임대료보다 훨씬 밑돌았다.

인천의 어느 대학교수의 집을 내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매매하고 싶다 했다. 

가격을 절충하고 영자 여사께 보여드리니 대만족이셨다. 

여사는 내 집을 가진 것에 뿌듯해했고, 하우스 농사를 지으며 함께 일을 하는 인부들 틈에서 자존감을 느끼는 듯했다. 집을 사라고 권유해 준 나를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보는 눈에선 늘 꿀이 떨어진다. 

집 가격이 오르면 흐뭇해 하고, 대출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며 만족해했다. 

그녀가 매매한 아파트는 내각리의 한신아파트다. 단지가 조용하여 전원주택지에 사는 느낌이다.

친해지고서 알고 보니, 영자 여사의 둘째 며느리는 이화여대의 교수다. 당신께 그렇게 살갑다고, 똑떨어지는 말솜씨로 아라비안나이트를 펼치는 영자 여사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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