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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Sep 09. 2021

부동산, 부의 사다리

집을 팔고 추억을 샀습니다.


손님이 오셔서 자신이 부동산투자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말해준다. 아는 형님이 부동산투자를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부를 축적하는 걸 지켜봤지만 자신은 투자할 금액이 없었다고 했다. 직장을 다니며 주말이면 발로 뛰며 정보를 얻고 형님이 투자로 성공을 할 때마다 부러웠다고 한다. 이제 임대료로 몇백이 들어오는 건물주가 된 형님을 부러워하며, 투자를 시작한 손님은 휴가를 내, 매매한 집을 수리하러 오셨다. 아내와 함께. 임대를 놓기 전에 손을 볼 필요가 있는 곳은 직접 공사를 하신다. 올 때면 빈손이 아니다. 오늘은 화과자 세트를 사 오셨다.    

이것도 아는 형님께 배운 정보일까? 그분은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할 때, 갖춰 입어야 할 의상까지 지적해 주셨단다. 정보를 얻으러 갈 때와, 상가를 사러 갈 때, 집을 사고 싶을 때의 의상이 같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글쎄..“그런 건 아니고, 사람의 마인드 문제지요!” 하고 받아친다.    


순수한 월급을 모아 집 한 채 사기 힘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제 부동산에 관심을 갖지 않고는 부의 축적을 생각하기 힘든 시절이 되었다. 이런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곳은 시골이다. 이곳보다 환경이 좋은 곳에 사무실이 있던 시절에 지도자급 위치에 속한 사람들이 부동산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치밀하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향후 미래가치까지를 계산하는 능력을 이미 장착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초보 공인중개사였다. 그들은 내가 대단한 경력을 가진 것처럼 대우를 해주고 내 의견을 물어오곤 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서 미진한 정보를 얻고, 부족한 내 실력을 메꾸어 갔다. 거짓말 같지만 공인중개사가 되기 전까지 부동산 사무실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더 넓은 아파트를 구매한 후에야 살던 아파트를 내놓으러 간 게 경험의 전부였다.   


 

나는 속으로, 돈을 좇으며,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는 그들의 속물성에 얼굴이 굳어갔지만, 이 대한민국에서 결국, 그들은 승리자다. 부의 축적이 주는 안락의 향연을 뿌듯하게 누리고 행복해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아무리 난무하고 이들의 재산증식을 억제하는 수단을 부려보았자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그들이 보호하겠다고 나선 가난하고, 겨우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투자할 곳이 있어도 몸을 움츠린다. 정부에서 하지 말라 했으니, 행하면 큰일이 나는 줄만 안다. 정부에서 내가 살고 있지 않은 집을 팔라하면 가장 먼저 매물로 내놓은 사람들이 선량한 이들이다. 이들만 희생양을 삼는 정부의 정책은 그래서 부자들의 놀음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주 화요일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출근을 하기 위해 차를 탄 내가 차 문을 닫기 전에 나차난 동생이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리 집 앞쪽의 밭에 온 모양이다.

“영규가 모레 계약서를 쓰자고 하네”

영규는 동생과 내가 잘 아는 토지 전문 공인중개사다.

“잘 됐네. 얼마에 파는데?”

“응, 8억 8000에 팔아 준다네.”

토지 176평에 창고 80평이다. 진입로가 협소한 곳이다. 시골 땅이 대개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는 세차게 쏟아졌다. 구리시에 사는 여동생이 출근길에 들러가랬다.

이 동생은 점심 먹을 곳이 마땅찮은 나를 위해 마구잡이로 반찬을 제공해준다. 난 마지못해 받아 일주일 동안 잘 먹지만, 반찬을 만든 수고로움과 메뉴 선정에 고민할 그 마음을 안다. 

비가 오니 도로정체가 극심했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 ‘이안 보스트리지’ 목소리로 수베르트의

‘물 위에서 노래함“을 스무 번쯤 들었다. 물 위를 비단처럼 뒹구는 피아노 소리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몽환적인 목소리는 빗줄기 속에서 그만이었다. 이대로 도로 위에 멈춰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농사를 짓기 위해 토지를 샀다. 그 밭엔 고추 농사를 지었다. 내 사무실 옆 마을이다. 풋고추를 따러 동생 고추밭을 가 본 나는 고추밭 시설을 보고 좀 놀랐다. 노동의 힘겨움이 고추포기마다, 밭이랑마다 숨어 있었다. 내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동생 밭은 마석이며, 수동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동생은 허리 수술을 해야 했다. 얼굴은 검게 그을려 상머슴꼴이었다. 그래도 소원은 이만 평쯤 농토를 매입해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내 사무실 옆 마을 땅엔 창고를 지었다. 나도 알고, 동생도 아는 영규가 동생을 조른 모양이다.  


   

조금 전에, 계약을 마쳤다며 올케와 함께 다니러 왔다. 오늘이 화요일에 말한 ’모레‘다. 계산에 어두운 나는 평당 800만원은 받은 줄 알고, ”잘 팔았네. 잘 팔았네!’ 했다. 이들이 가고 난 후 계산기를 몇 번 두들기니 평당 500만 원이다. 주거지역인데 잘 판 것도 아니다. 창고가 지어진 포천 땅이 평당 400만 원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남양주, 이곳은 토지 매물 찾기가 쉽지 않다. 자금을 들고 기다려도 마땅한 토지가 나오지 않는다. 가격도 큰 폭으로 뛰었다. 이제 포천에서 토지 찾기도 힘들다. 3기 신도시, 왕숙지구의 보상이 풀리면 이 난리를 어떻게 풀어갈까 싶다. 그린벨트나 절대농지로 묶어 놓은 토지를 수용해 신도시를 조성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대로 이어오며 농사를 짓던 땅을 헐값에 수용당한 농부들은, 보상받은 금액으로 어디로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가 말이다. 주변 토지 시세는 이들이 뛰어들어 누를 수도 없다.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게 아파트값만 아니란 말이다.    



작년에 수동면 입석리, 구불구불 들어간 곳에 밭을 매입한 손님이 그런다.

“사장님, 여기도 더블로 뛰었어요. 사장님 덕분이예요.”

왜, 내 덕분이겠는가. 자신의 실행력에 박수를 보내야지. 

10억을 가지고 토지를 사러 오신 손님이 있었다. 십 년이 넘은 이야기다. 현실은 10억인데 이 손님의 눈은 20억이었다. 그러니 보여주는 땅이 마음에 들 리 있겠는가. 10년이 지나도 손님은 여전히 10억 땅을 찾고 있었다. 10년 전에 10억이 20억을 넘은 지 오래다. 부동산 가격이 이렇다. 부동산에 투자를 안 한 사람만 상대적으로 벼락 거지가 되는 세상이다. 금방 다녀간 손님께서 한마디 하고 가셨다.

“주식, 요새 엄청 깨졌어요. 손을 놓고 있어요.” 

써놓고 보니 꼭 부동산 투자 권유를  강요하는 글 같다.

진심은 이게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부의 사다리로 가는 지름길이 부동산이라면, 유행어로

“이건 아니라고 본다!” 

나의 진심이다.     


https://youtu.be/Pbb36KUPf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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