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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Sep 30. 2021

무기가 되는 스토리에 맞춰 써 보는 소설

내 카페에 밤이 흐른다

글을 쓰고 함께 읽는 사람들의 모임인 카페 힐링스페이스에서 독서모임 <글너머>를 하고 있다. 멤버는 달마다 달라지지만,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9월에 읽은 책은 <무기가 되는 스토리>이다.

<무기가 되는 스토리>엔 브랜드 전쟁에서 살아남는 7가지 문장 공식이 있다. 이 문장 공식에서 자유로운 영화나 소설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이 책을 읽어가면서 깨달았다.


<글너머> 멤버들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7가지 문장 공식에 맞추어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소설을 써 본 적이 없으니 남감하다. 그래도 과제는 해야한다.


7가지 공식은 위의 그림이다. 머리를 쥐어 짜며 스토리를 구상했다. 심심풀이로 읽던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들이 얼마나 고뇌하고, 공부하며, 취재를 하는지 고충을 이해하겠다. 편하게 자리잡고 느긋한 자세로 아무 고민없이 책을 읽는 독자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숙제를 해야하니 무작정 써 본다.


***

                   <내 카페에 밤이 흐른다>


밤이 흘러가는 소리를 나는 숨죽여 듣고 있다. 느끼한 숨소리를 뱉어내며 잠이 든 남자는 간간이 앓는 소리를 낸다. 어쩜 숨소리까지도 저렇게 밉살스러울까!. 베개를 들어 얼굴에 틀어박고 싶다. 동네의 끝에서 동네 안으로 잠적하는 개 짖는 소리가 밤의 정적 속으로 파고든다. 나는 이방을 떠난다. 늘 그랬다. 언젠가는 떠날 거라고. 그런 생각은 내 숨통을 트이게 했고, 그 힘으로 나는 이 집의 생활을 견뎌 냈다. 이 껍질이 뭐라고. 구토증이 밀려오는 결혼생활은, 이미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내가 마음을 정한 건 오래전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다. 기술은 좋으나 성정이 온화하지 못한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사건건 시비에 휘말렸다. 아버지는 배관공이었다. 늘 술에 절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처자식을 보실 필 줄 몰랐다. 엄마가 가장이 되었다. 나는 네 명의 동생들을 엄마 대신 돌봐야 했다. 엄마는 내가 학교를 그만 다니길 원했다. 학교보단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오라고 성화였다.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다. 교복을 입고 거리를 걸어가면, 길 가던 사람들이 넋을 잃고 쳐다봤다. 내 눈이 유난히 검고 서늘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잘 생긴 이마에서 내 영특함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배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생 녀석은 갓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내가 어찌나 이쁘던지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했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내 살림 솜씨는 매웠다. 어린 나이에 살림을 떠맡고 동생들을 보살핀 덕이다. 이런 내 솜씨를 탐탁치 않아하던 사람은 시어머니다. 근본 없는 시어머니 음식솜씨에 넌더리가 난 시댁 쪽 사람들은 내 정갈한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시어머니와 나를 비교했다. 시어머니의 눈이 고울 리 없다. 내 배우지 못함을 알고도 당신의 잘난 아들, 어린 나이에 공기업의 전도유망한, 세상 없는 아들이 코를 빼니 어쩌지 못하고 며느리로 들이기는 했으나, 내 자리는 늘 그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남편과 나를 중매한 사람은 아버지의 먼 친척이었다. 남편과 나를 연결한 이유가 요새 젊은이 같지 않게 반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사에서만 되먹은 싹 같던 남편의 실상은, 바람 속에 서 있는 내 친정집을 그리워하게 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겉 다르고, 속이 다른 이유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였다. 그는 철저한 자기 기만 속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싸맨 악취는 언젠간 가면을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시댁 식구들은 친정 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새삼스러운 듯 대놓고 억울해 했다. 다행히 내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있었다면 내 터전이 좀 굳건했을까?. 

해가 서산에 걸리면 노을을 보며 다짐했다.


“너 하곤 안 살아!” 그리고 5년을 견뎠다. 


빈 몸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남편의 이혼조건이었다. 나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다 수용을 했다. 내가 돌아갈 곳은 없었다. 트렁크 하나 들고 친정집으로 들어간 나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밤새 들으며 혀를 깨물었다. 내 작은 몸 하나 편히 누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집 잘 간 딸 덕을 보고 싶었던 엄마의 푸념이 밤낮으로 창호문 사이를 드나들었다. 눈물을 삼켜야 했다. 내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남동생 취직자리를 남편에게 부탁해서 취업을 시켜줘도 자리를 못 지킨 건 동생들이었다. 엄마는 그것도 못마땅해 했다. 그들이 원한 건 편하고, 보수는 높은, 하늘아래에 없는 자리였다.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은, 내 익숙한 불행에서 탈피하여, 평생 내겐 낯설었던 행복 속으로 걸어가게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돈이 없는 행복은 텅 빈 곳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쓸쓸할 거라고 나는 믿었다.


고모네 집은 휘어진 골목길 끝에 서 있었다. 시들기 시작한 능소화 줄기가 담장을 감싼 위로 푸른 기와지붕이 보였다. 자동 대문이 열리고 현관까지 걸어가는 길엔 능소화 줄기가 토해놓는 눅눅한 어둠이 함께 했다. 고모의 얼굴은 언제 봐도 해사해서, 박꽃을 연상하게 했다. 인자한 눈웃음은 거실 창을 들여다보는 백일홍 꽃처럼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아늑했다.


“소식은 들었다. 너를 이해한다. 잘했어!”


“고모, 저를 도와주세요. 돈을 벌고 싶어요. 아니, 그래야만 해요.”


“네가 뭐를 할 수 있겠니?. 며칠을 두고 한 번 생각해 보자꾸나.”




 며칠이 지난 후 고모가 불렀다. 무언가 결심을 한 얼굴이었다. 새하얀 얼굴에 홍조가 드리워 있다.


“내가 친구를 따라 부동산 경매 공부를 했구나. 친구와 함께 발품을 팔며 현장을 다닌 지도 몇 년이야. 이제, 이 집은 경매에 뛰어들어도 되겠다, 아니면 힘이 들겠다, 이런 결론이 나와. 물론,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가 낙찰을 받을 순 없어. 낙찰대금을 얼마로 써내야 내 물건이 되느냐는 순전히 발품의 힘이야. 친구는 이미 전국의 핫한 곳을 돌며 낙찰을 꽤 받았어. 낙찰을 받은 후 바로 매도가 안 되는 집은 전세를 놓았지. 몇 년이 흐른 뒤 주택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이 집들이 순식간에 팔리는 거야. 자기 말로 푼돈으로 시작한 투자가 눈덩이가 되어 돌아왔다고 했어. 이젠 토지 쪽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이야. 주택 공급은 많아지고, 인구는 줄어드는 우리나라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한다고 해도, 토지는 유한하니 토지가격은 내림이 없다는 논리를 펴더라. 고모는 아직 주택시장도 좋다고 생각해. 나와 함께 해보지 않으련?”


고모는 정원 귀퉁이에 따로 지은 서재로 나를 옮겨오게 했다. 고모의 서재엔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이 창을 통해 보이는 서재엔 정원의 잔디 향이 가늘게 피어 올라왔다. 어린 동물의 상처를 핥듯, 시간은 고요히 흘러갔지만, 투자전문서적에 탐닉한 내 마음은 태풍이 한바탕 뒤집고 지나간 자리처럼 혼란스러웠다. 고모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고모를 따라나선 건 두 달이 지나서였다. 온종일 다리품을 팔며 현장수업을 했다. 권리 분석하는 방법은 서류를 보며 고모의 설명을 들었다. 그 사이 고모는 몇 개의 아파트를 낙찰받았다. 나는 낙찰 받은 집의 주인이나, 임차인을 만나 손쉽게 집을 명도 받았다. 좀 까다로운 입주자는 어쩔 수 없이 명도소송을 통하여 해결했다. 


어느 날 고모가 말했다.


“나랑 가 볼 곳이 있다.”


고모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어린이 대공원 근처의 단독 주택이었다. 3층 집이었다. 대지가 500평이라 했다. 유명 어느 건축가의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빛과 바람이 스미는 마당 길을 따라 눈길을 주면, 온갖 정원수에 싸인 현관이 보였다. 마당 길 양편으론 풍요로운 황금빛을 발하는 잔디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런 부자도 망하는구나!”


고모의 말에 따르면 이 집은 2번 유찰이 되었고, 다음 달 초에 3차 경매가 진행된다고 했다. 고모가 이 집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이거. 너에게 맡길 테니 소신껏 낙찰가를 정해서 경매를 받아 보거라. 남은 몫은 네게 다 주마. 명도까지 직접 해 보아라.”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통해 실상을 파악했다. 집 시세와 맞먹는 저당권에, 각종 압류에, 그야말로 난잡한 상태였다. 구청에 들러 전입 상태를 확인하니 가족은 거의 전출된 상태고, 소유주인 72세의 남자만 남아있었다. 


낙찰 가능 금액을 산출하는 데 며칠을 걸려 씨름했다. 소신껏 낙찰 희망가를 정한 후, 시작가의 10%를 봉투에 넣어 제출했다. 담당자가 이 물건에 입찰한 사람 수를 발표하는데 11명이었다. 내가 낙찰되었다고 호명하는 순간 뒤를 돌아보니 출입문 쪽에서 고모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매각결정허락이 난 후, 낙찰금액을 납부하라는 법원통보가 왔다. 나는 이미 은행을 통해 대출을 신쳥해 놓은 상태였고, 나머지 잔금은 고모를 통해 확보해 놓았었다. 


거의 은행 돈이지만, 내 명의의 대저택이 생겼다.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자 집을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백발의 허리 곧은 노인이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남의 손에 넘어간 집 뜰에서 정원수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었는지, 손에는 전정 가위가 들려 있었다. 


노인은 낙찰자의 방문에 거부감이 없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체념을 한 건 벌써 오래 전이라고 했다. 아들네 가족들은 이게 무슨 망신이냐며 서둘러 이사를 가버렸다고 했다. 노인은 당신의 손때가 묻은 집 곳곳을 안내했다. 집안은 겨울바람이 씽씽 불어댔다. 노인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송구스러웠다. 


“어디, 가실 곳은 정하셨는지요?”


노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뒤를 따라 지하실로 들어섰다. 방문을 열자 금빛 반짝이는 계급장이 달린 군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장군 출신이라 했다. 군 출신의 장성들이 정치판에서 세력을 떨칠 때, 당신도 그 판에 뛰어들어 벼슬을 하기도 했고, 아들이 사업을 시작하자 뒷배를 책임진 건 자신이라고 했다. 아들의 사업은 벌판에 불이 번진 것처럼 일어났고, 맹수의 공격처럼 사세를 확장한 아들은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알곡이 영글지 않은 상태로 확장에만 몰두한 아들의 사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군부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했다. 노인은 언제나 불안했다고 한다. 차라리 이 장중한 건물의 임자가 어서 나타나길 기다렸다고 했다. 누릴 것 다 누려보았노라며 고개를 돌려 군복을 자랑스레 바라보았다. 노인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한창 시절에 가까이서 보던 영화배우 누구누구를 닮았다며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고통스런 눈빛을 거두었다.


노인이 떠나간 집은 휑뎅그레했다. 주인을 잃은 정원의 노송도 잎을 떨구고 있었다. 후박나무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자 내 가슴에서도 알 수 없는 무엇이 떠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집을 단장했다. 그리고 비워두었다. 매물로 내놓은 건 10개월이 지난 후였다. 고모는 느긋하게 기다려라, 기다려라 했지만, 다달이 납부해야 하는 은행이자가 부담이었다. 다른 매물을 찾아 동으로 뛰고, 서로 뛰면서 불안을 녹였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때면 불안이 나를 끌고 지옥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저 집은 내게 이익을 남겨 줄까? 팔리긴 할까? 매물을 보러 오는 손님은 많은데 투자금액이 크니 입질이 오지 않았다. 1990년 10월의 낙찰가는 23억이었다. 집을 손질하여 매물로 내놓은 가격은 35억이었다. 







                          사진출처 : pinterest


여기저기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돌며 물건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나는 도도했고, 수작을 걸어오는 남자들은 대찬 내 욕설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나는 그랬다. “감히, 나를...”


1년이 지나갔다. 고모와 함께 나는 주택들을 사기도 했고, 낙찰을 받기도 했다. 이익이 생기면 고모는 통 크게 한 몫을 떼어 주었다. 명도 과정에서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6개월이 되도록 집을 비워주지 않던 예전의 한 주인은, 강제 집행을 하기 위해 집행관이 현장에 도착해 강제로 문을 열자, 독극물을 마셨다. 죽어도 내 집에서 죽겠다는 마지막 항거였다. 119 구급대가 오고. 경찰이 오고, 주변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왔다. 그렇게 번 돈을 친정 엄마에게 주면, 엄마의 입이 귀에 걸렸다. 딸이 어떻게 번 돈인지 안중에도 없는 엄마는 사치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학교 다니지 말라고 구박하던 도끼눈이 풀어지니 목소리까지 동그랗게 변했다. 엄마 목소리가 느렇게 나긋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느 날 잠을 자는데 거짓말처럼 온갖 불안이 사라지고, 온몸에 평화의 기운이 깃든다고 느꼈다.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기분이 좋았다. 본디 꿈을 믿지 않은 사람인데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꿈은 맞았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저택이 팔린 것이다. 매수자는 고급빌라를 지어 분양하는 사람이었다. 부촌에 자리 잡은 내 집이 고급빌라를 짓기엔 딱이라며,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할까, 땅딸막한 빌라업자는 조급해 했다. 고모와 상의하니 흔쾌히 그러라며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잔금을 치르고 양도소득세를 내고 나니 내 손에 딱 10억이 떨어졌다. 평생 엄두도 못 낼 나만의 돈이 생긴 것이다. 겁이 났다. 이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투자를 결정한 순간 이 돈이 날개를 달고 어디로 떠나갈 것만 같았다.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었다. 평안한 안주가 그리웠다. 사람이 약해지면 점쟁이를 찾아가게 되나 보다. 내가 그랬다. 하얀 얼굴에 가냘픈 몸매의 보살은 생김새와 달리 입이 거칠었다. 눈이 깊었다.


“넌, 돈이 새나가는 팔자야. 무조건 부동산에 묶어야 해. 더 가지고 있으면 흐른다. 흘러! 빠져 나간다고!"


보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믿었다. 내 사주팔자의 오행이 그렇다는데 꼭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래가치를 생각하고, 싼 땅을 매입하러 다녔다. 땅을 보는 안목이 없으니, 믿음직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들러 조언을 구했다. 경매를 하기 위해 발품을 팔 때 신세를 진 공인중개사였다. 손님으로 가장하지 않고 경매를 위해 왔다고 하면 친절하게 길잡이를 해 주었다. 내가 마음을 보이니 그쪽에서도 성심껏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공인중개사의 전화를 받고 토지를 보러 가니 왕숙천 상류가 흐르는 곳에 1000평의 토지가 나와 있었다. 더구나 2차선 변이다. 내가 가진 돈의 절반이면 살 수 있는 토지다. 아직은 한산한 도로지만 상가를 지어도 승산이 있다 싶었다. 주변에 공장이 많으니 공장 부지로 사용해도 좋지 않겠는가. 계약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을 주변에 살게 해 드렸다. 부모님은 일부 땅은 당신들이 농사를 지었고, 나머지는 주말농장으로 임대를 해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주변에 왕숙신도시가 발표되자 정체되었던 토지가격이 고공행진 중이다. 보상이 풀리면 이곳의 토지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가격은 둘째치고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동안 나는 토지공부와 경매공부는 물론 바리스타 자격까지 따 놓았다. 왕숙천이 보이는 내 땅 위에 카페를 목적으로 건물을 올렸다. 1000평이니 주차장으로 손색이 없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카페는 늘 만원이다. 외진 곳임에도 사람들이 밀려든다. sns의 힘이다. 직원들의 움직임은 경쾌하다. 


왕숙천을 건너간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죽엽산이다. 카페 창이 액자 틀이라면, 죽엽산은 액자 속의 풍경이다. 산을 바라본다. 카페 창의 프레임에 갇힌 산은 사계절의 변화를 몸소 보여준다. 영업이 끝나면 나는 산을 앞에 두고 커피를 마신다. 피어오르는 향이 밤과 함께 흐른다.


별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거친 내 손 위로 우아하고 품위 있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밤이 흐르는 소리는 희뿌염한 미명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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