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대형마트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멘트 냄새, 카톤 포장재 냄새, 섬유유연제 같은 산업화의 인공 냄새가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미개척지다. 효율성을 고려한 규격도 별로 없고, 생산성과 호율성을 위한 과학적인 동선動線 배치도 부족하다. 그저 옛날처럼 큰 변화 없이 좌판과 점포가 늘어선 모습이다. 다만 비를 피하기 위한 지붕이 들어선 것과 햇빛을 가리기 위한 차양막 정도가 시장이 변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나 상인들도 그리 바빠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여유 있게 구경하면서 움직인다. 통로 자체가 스피드 있게 빨리 걸을 수 있도록 넓지도 않을 뿐더러, 오른쪽으로 다녀야 한다는 쓸데없는 계몽성 안내문구도 없다. 실은 나이가 들어 빨리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둔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평소 성큼성큼 빠르게 걷지만, 시장에 오면 여유롭게 걷는다.
물건을 사고 흥정하면서도 서로 서두르지 않는다. 오랫동안 서서 물건을 살까 말까 쳐다보아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주인은 혼잣말하듯이 평범한 말투로 툭 던진다.억지로 구매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떡 한 팩에 3천 원, 두 개 5천 원에 가져가세요"
시장에 오면 시간에 쫓겨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공영주차장 비용도 저렴하고 한 시간은 무료 티켓으로 돈이 들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특히 돌아다니다가 좌판에서 파는 토스트, 어묵, 부침개, 만두 등은 시장기를 잠시 속이기에 안성마춤이다. 저렴하면서 맛은 일품이다. 유일하게 시장에서 끼니로 먹는 음식은 칼국수이다. 예전에 잘 가던 콩나물 국밥집은 폐업을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칼국수 집에 왔다. 자주 들르는 곳은 부평시장이고, 가끔 가는 곳은 가좌시장이다. 오늘은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다녀오면서 가좌시장에 들렀다. 시식 코너에서 주섬주섬 먹다 보니 굳이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시장기는 속였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습관적으로 시장으로 핸들을 꺾었다. 오랜만에 '홍두깨 칼국수'에 왔다. 점심시간이어서 밖에서 기다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냉면, 쫄면을 주문하자니 곧바로 옆자리에 아주머니 4명이 주문을 한다. 세 명은 70대, 한 명은 50대 후반 아니면 60대 초반으로 보인다. 들리는 대화를 통해 성당 누님들인 걸 알았다.
맞은편 오른쪽에 혼자 앉아 식사하는 7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김치를 더 먹기 위해 접시를 들고 일어났다. 걸음걸이가 느리다. 평소라면 '왜 느리게 어슬렁거리나'라고 생각했을 텐데, 오히려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이 안정되고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한 5미터 정도 떨어진 반찬대에 갔다가 자리까지 돌아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차분하다고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자세가 전투적戰鬪的으로 바뀌었다. 아마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인가 보다. 만원 전철을 타야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출퇴근하려고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시간에는 기다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휴식을 취하려고 항상 서둘렀다. 회사에서 하는 일은 기한에 여유를 갖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돈이 왔다 갔다 하니 무엇이든 빠르게,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30여 년 그렇게 몸에 배었으니, 가치관마저 그렇게 물들어 버렸다.
인생의 황금기인 30대, 40대를 기업 조직 속에서 보냈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방향성보다는 속도가 미덕이 되어버린 산업화의 부품처럼 살았다. 어느 때부터인지 슬로우 라이프 'slow life'처럼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는 기사와 TV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 전선에서는 지금까지도 '빠르게 더 빠르게' 철학이 자리를 공고하게 지켜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지만 물질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거의 빈貧밖에 남지 않은 게 현실이 되어버린 듯하다.
성당 누님들 먹는 거에 진심인 듯하다. 연세에 비해 주문한 음식량이 만만치 않다. 왕돈가스 2인분, 쫄면 곱빼기 하나, 만둣국 하나 시켜서 서로 나누어 먹는다. 과연 저 많은 음식을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사 중에 이바구도 맛깔나게 턴다.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음식을 남길 일은 없겠다 싶었다.
"청라로 이사 가고 나서 재미가 없어. 이렇게 싸게 맛있게 먹을 데도 없어.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신포동 시장 가봤어? 골목골목으로 가다 보면, 여기보다 반 만한데 칼국수 맛있게 하는 집 있어. 젊을 때 친구들하고 나이트 갔다가 해장하러 잘 갔지."
"일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연수역 근처에 ○○뷔페에 가면 맛있어."
"부평시장은 공산품이 싸, 여기는 음식물이 싸고."
"연수동에 가면 오리고기 맛있게 하는 집 있어. 오리피도 먹으라고 하고..."
"그 집은 수산나 할머니도 잘 아셔. 한 마리 다 드셔."
성당 얘기도 가끔 한다. 어떤 남자 교인은 작곡하고 신부님은 그걸 노래하고 어쩌구 저쩌고... 오늘은 선교가 없어 시간이 나서 여기에 오고, 어쩌고저쩌고...
회안어린 옛날이야기를 할 만도 한데 지난날의 소회 같은 건 전혀 없다. 그저 일상 얘기인데 남 흉보는 내용도 없다. 건전하다. 식욕도 왕성하다. 그 많은 음식 거의 다 드셨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자니 자꾸 웃음이 나온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성당 누님들이다. 정겹게 느꼈다. 오랜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식당을 나설 때 꾸뻑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정겨움이던가...
나이 들고 힘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짐 같은 존재'라고 쉽게 동의했던 나쁜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검색 버튼을 누르자마자 0.5초라도 느리게 응답하면 참지 못하고 되돌아가기를 해서 다시 검색하는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좀 늦춰야겠다. ARS에 접속해서 이리저리 번호를 불러대며 뺑뺑이를 돌리더라도 성질내지 말고 좀 기다려야겠다. 동네에서 앞 차가 도로를 닦으면서 가는 것처럼 느리게 가더라도 클랙슨을 누르지 말아야겠다.
늦더라도 양보하고, 음미하고, 느끼고, 감사하며 살아야 사람처럼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머슴으로 살 때야 스피드가 최고였지만, 지금은 자유인 아니던가. 나 스스로를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만드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