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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Jin Jun 25. 2020

극장, 경험하는 곳.

무대와 객석의 사이에 애매하게 걸려버렸다.

사람과 사람

실제 공연을 준비하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다투기도 하며, 생각보다 흔하게 막장드라마 같은 얘기도 들려온다. 끼와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이들이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경계심과 존경, 그리고 끊임없는 마찰음. 그리고 그 사이에 생겨나는 앙상블.


사람과 소통하고 조율해가는 과정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첫 공연이 올라가고 난 뒤 몰려오는 피곤함 속에 드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변태 같은 이 쾌감은 내가 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런 부대낌을 동경하며 20대 전부를 극장에서 보내며 공부하고 일해왔다.



극장으로

학창 시절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며 다독이며 지내는, 여느 인기 웹툰 도입부의 찌질한 주인공 같은 학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찌질하다.) 대한민국 고3, 인생의 1차 갈림길 앞에서 공연 기획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예술대학교 진학을 해버렸다.


모교에서 만난 크고 작은 블랙박스 극장은 마치 첫 경험처럼 애틋하다. 각각의 공간들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학도들에게 의미가 참 깊음이 분명하다. 직접 참여한 첫 프로덕션이 상연된 극장일뿐더러, 돈이나 명예가 아닌 예술적인 성취를 바라보며 동료들과 뒹굴고 싸우며 이뤄낸 순수한 추억들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대학생 특유의 열정으로 불가능한 것이 없었던 극장이다.


학교를 졸업하며 공연 기획사나 프리랜서로 공연 현장으로 뛰어드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내 사회생활은 우연하게 극장에서 시작되어 극장으로만 이어졌다. 뉴욕의 극장부터 대학로의 극장, 문화재단의 극장, 그리고 사기업 극장까지. 운 좋게도 여러 극장에서 인턴과 프로듀서로 일하는 동안 다양한 성격의 수많은 작품을 관람했고, 조금씩 공연 쟁이가 되어왔다.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공연들과 그 극장들이 남아있다.


정말 스스로 인정하기 싫지만, 이렇게 극장은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



Live, 살아 있는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공연 실황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바로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극장은 여전히 운영되고 존재한다. 직접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비싼 티켓을 구매하면서까지 소비되는 라이브 콘텐츠의 매력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극장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오랜 시간 존재해 왔다. 마치 살아있는 듯 기억되는 예술의 감동은 21세기의 전유물이 아니며, 다양한 현대 기술로 넘쳐나는 대형 뮤지컬뿐만 아니라 촛불로 밝힌 무대에서도 그 감동은 존재해 왔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눈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연기한다는 단순한 이유보다는 조금 더 대단한 이유를 찾고 싶다.


지금도 정말 많은 극장들이 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돈 많은 부자의 취미생활일 수도 있고, 예술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공간일 수도 있다. 


사실 극장이 존재해온 별다른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극장을 좋아하는 나 같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통해,

그렇게 존재해 왔던 건 아닐까.




20대 끝자락에서 드디어 극장을 벗어났다.(=퇴사)

그리고 일반인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이제는 관계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관객이 되기는 싫어하는
무대와 객석에 걸쳐버린 애매한 관객이 되어버렸다.


극장에서 일했던 기억을 그리워하며 공연을 소비하는 관객들을 둘러보고, 나름 극장의 성향도 분석해본다.

그리고 극장을 아끼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극장에 대한 소개글을 조금씩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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