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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iel Jun 04. 2020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정체성과한국 페미니즘의 방향성

페미니즘 정체성에 대한 고찰, 그를 통한 한국 페미니즘의 방향성에 대해


얼마 전,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유튜브를 시청한 적이 있다. 그녀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군대에서 20대를 보내며 나라를 지켜주는 남자들의 노고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소방관과 경찰관 없이는 못 살 거면서 왜 차별과 평등을 운운하냐는 것이었다. 해당 유튜브의 댓글란에는 '얼굴도 예쁘시고 목소리도 조곤조곤하시고 바른말만 하신다' '아이들에게 교육 목적으로 꼭 보여주겠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나는 이 유튜버를 꼬집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를 통해 책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에 대해 곱씹어 보고싶을 뿐이다. 해당 유튜버의 주장은 개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반(反)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으며, 댓글 역시 현 시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적 의견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을 설명하자면, 나는 <평화학 시론>이라는 평화학 담론에 관한 세미나를 통해 평화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한국은, '안보 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일상 곳곳에, 사회 곳곳에 팽배한 군대식 문화, 즉 계급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권력, 수직적 관계, 힘의 논리가 팽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분단국가로서 특수성에 의해 기인하나, 분명 페미니즘적 고찰 및 인식 변화를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책 속 '정체성의 정치'와 '민족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책에서는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은 정체성을 기반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상반된 결과로 귀결된다고 설명한다. 민족주의는 결국 가부장제를 철저히 옹호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힘이 센' 남성들을 책임자이자 보호자로 세우는 동시에 '힘이 약한' 여성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을 배제시킨다.

앞서 언급한 유튜버의 논리는 민족주의의 정체성과 어느 정도 결합한다. 그에 따르면, 힘이 센, '우리를 지켜내고 있는' 남자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은 여성들이 '나대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주창하는 '책임은 회피한 채 차별을 운운하고 평등을 추구한다'는 프레임은 페미니즘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그들의 노고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를 '인식'하고, 남성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의롭지 못한 구조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따라서 그녀가 말하는 남성/여성의 역할을 구분 짓는 젠더 이분법적 사고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차별을 야기한다. 물론 차이를 무조건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구분 짓는 과정 역시 차별을 기반으로 두니, 차이를 인정하되 그 차이의 구분으로 인한 사회적 역할을 국한하지 말자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여성들의 권리만을 주창하는 사상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성이분법적인 사고에서 기반한 차별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이에 관한 억압-피억압적인 관계의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물론 한국의 모든 페미니즘 운동이 이러한 가치를 온전히 추구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즘적 가치 추구의 자유 역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믿고 있으며,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본질적이며 궁극적이고, 온건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페미니즘 활동을 해야한다고 억압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국 페미니즘에서 몇 가지 아쉬운 것은,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난민, 다문화가정 등 반(反) 민족적 페미니즘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점, 젠더 이분법적 대립구조의 강조로 인해 페미니즘이 마치 여권 신장만을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특히 책의 말미에서 지적한 내용은 한국 페미니즘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 큰 여운을 남긴다. "자본주의적 절대주의는 정의로서의 평등을 무색하게 하고, 평등 개념의 하향평준화를 이끌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은 기존의 자유와 평등, 전근대적 질서로부터 탈출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과는 달리 성공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개념과 결합하고 있다"는 내용은 한국 페미니즘이 특정 그룹만을 대변하며, 이익 기반 운동으로 번져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책의 제목처럼 피해와 가해를 구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피해와 가해를 젠더 이분법과 연결 지어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인식은 페미니즘적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이지 않다. 나 역시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 젠더 이분법적 접근이 마치 페미니즘의 요소인 것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젠더 이분법적 접근은 결국 페미니즘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며, 오히려 여성은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 남성은 착취하고, 지배하기만 하는 존재로 구조화되는 민족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끝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혹은 선택적으로 지지하든, 모두가 페미니즘 관련 문제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쉽게 설명하자면 남성이라고 성차별적 구조의 피해자가 되지 못하란 법이 없고, 여성이라고 가해자가 되지 못하란 법 없다. 그러니 진정한 페미니즘 가치의 실현에 있어 '정체성' 정치는 페미니즘의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에 틀림없으며, 페미니즘적 문제에 관한 논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한 고찰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고로 나는 이 책과 본 글을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모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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