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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니앤이코노미 Sep 25. 2020

영국 요리가 유독 맛없는 이유

우리는 모처럼 멋진 저녁식사를 계획할 때 프랑스 요리를 떠올리곤 한다. 반면 영국 요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히 칭할 만한 음식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일궈왔지만 이렇다 할 만큼 우수한 음식문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영국을 방문한 사람들이 영국 요리의 형편없는 수준을 보고 놀라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형편없는 요리를 먹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이다.





영국이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음식문화를 갖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요리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인 제약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후는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단위 면적당 농산물의 산출량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떨어진다. 그래서 대표할 만한 와인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고, 영국에서 만든 빵 또한 밀의 품종이 좋지 못해 맛이 별로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풍족하지 못한 식자재 즉, 열악한 예산선 안에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쾌적한 기후 환경에서 살고 있는 다른 유럽 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에게 음식이란 귀한 것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 되었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을 때 식자재를 원활히 생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도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는 오랫동안 부족했던 식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 음식문화를 만들어 나갈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자원으로 여겨왔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음식문화를 이끌어왔다.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인의 후예인 미국인에게 식자재란 다양한 요리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기초 재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손실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요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결국 미국인들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공산물을 찍어내듯이 패스트푸드라는 음식 자원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처럼 영국과 미국이 음식을 문화나 레저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식자재에 대한 열악한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농산물 수출국일 정도로 비옥한 토양과 알맞은 기후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덕분에 먹는 문제에 대한 제약조건, 즉 예산선은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음식문화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조합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것이 프랑스가 오늘날과 같은 우수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지금도 프랑스는 패스트푸드 문화를 단순히 배만 채우기 위한 비문화적인 행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국에 맥도날드가 널리 퍼지는 것에 크게 저항한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전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서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프랑스 국민들 또한 영국, 독일 등 인근 국가의 요리는 농민의 요리로 치부하고 자국의 요리야말로 상류사회의 요리라고 칭송한다.





그러나 비옥한 토지와 축복받은 기후만으로 프랑스가 훌륭한 요리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크 왕국 시절인 8세기 경까지만 해도 프랑스 요리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문헌들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기아에 허덕였다는 기록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주로 먹었던 빵 또한 말랑말랑하고 먹기 좋은 식감이 아니라 돌처럼 딱딱해 따뜻한 스프에 적시지 않고는 먹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12세기에 들어서도 구운 고기와 데친 야채가 프랑스 요리의 거의 전부였다. 당시 영국의 요리문화와 비교해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프랑스가 식문화 강국이 된 역사 프랑스는 16세기에 벌어졌던 백년전쟁의 승리로 절대왕정이 공고해지고 유럽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식문화도 함께 발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는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과도 교역을 하면서 다양한 농산물과 조리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왕가에 이탈리아의 부호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트린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edicis가 시집을 오게 되면서 프랑스 음식문화는 큰 변혁을 맞게 된다.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는 서적들을 보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법과 음식 예절은 메디시스가 소개한 식자재와 조리법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식탁 예절을 그 원형으로 삼고 있다. 당시 문헌에 따르면 그녀가 데려온 요리사가 각종 스프와 베샤멜 등의 소스, 브로콜리 요리법, 잼과 케이크, 설탕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프랑스 왕궁에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왕실과 많은 귀족들은 그 맛의 황홀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 맛을 잊지 못한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메디시스가 소개한 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식자재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옥한 토지와 적합한 기후 덕분에 그들의 시도는 풍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또한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디저트 문화가 퍼지고 난 뒤에는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해안에 배를 보내 얼음을 운송해오기도 했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식문화에 열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프랑스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음식문화는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16세기에 앙리 4세의 아들 루이 13세가 스페인 왕의 딸과 결혼하면서 프랑스의 음식문화는 스페인 왕가에 전달되었다. 18세기에는 루이 15세가 마리아 레슈친스키와 결혼하면서 폴란드에도 프랑스 요리가 전파되었다. 기후 환경이 쾌적하여 농산물 생산에 대한 제약조건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스페인은 이를 계승 및 발전시켜 나름의 음식문화를 이어갔다. 반면에 기후 환경이 열악한 폴란드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음식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데이트를 하거나 누군가를 융숭하게 대접할 때 프랑스나 스페인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을 찾곤 한다.





이들 나라가 이처럼 뛰어난 음식문화를 갖게 된 계기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되었지만 그에 앞서 풍족한 식자재로 여러 요리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넉넉한 제약조건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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