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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ug 17. 2023

영화와 불교4_<필로미나의 기적(2014)>

업이 삶이 되는 시간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불교가 들어온 건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이다. 불교는 고려가 망하는 1392년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국교로서 번영을 누렸다. 비록 격동기를 거치며 옛 영광은 잃었지만 불교의 자취는 여전히 생활 전반에 남아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교 용어를 많이 쓴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더 글로리>에서 목사의 딸은 ‘이판사판’을 말하고, 드라마에서는 ‘이게 다 업보다’라는 대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부부가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지’를 묻고(이 질문은 윤회를 전제로 한다), 성격이 온화하고 관대한 사람에게는 ‘보살’이라는 별명을 붙인다(심지어 다른 종교를 믿어도 말이다). ‘삼보일배’는 언젠가부터 정치&사회뉴스에서 투쟁과 설득의 수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판사판, 윤회, 업보, 보살, 삼보일배는 모두 불교에서 유래한 단어다.


사진 1. 단대신문 '훈민정Talk! 41. 불교용어'




 흔히 쓰는 불교용어 중의 하나가 업業이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업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단어 ‘자업자득自業自得’ 속의 업이 바로 그 업이다. 방경일의 《우리가 모르고 쓰는 생활 속 불교 용어》에 의하면 자업자득은 반야류지般若流支 스님이 번역한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자업자득은 6세기 초반부터 사용된 역사가 깊은 단어인 것이다. 


 업을 업보業報와 혼용해서 쓰기도 하지만 둘은 의미가 다르다. 업은 행동이다. 아무 행동이나 업이 되는 게 아니고 의도를 가진 행동만이 업이 된다. 절집에서 숱하게 듣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란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말로 짓는 구업口業,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을 말한다. 매일 행동하고 말하고 마음먹으니 깨어있는 동안 계속 업을 짓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업에는 좋은 업(선업)과 나쁜 업(악업)이 있다. 업의 결과(보報)를 업보 또는 과보라고도 하는데 좋은 업에는 좋은 과보가 따르고, 나쁜 업에는 나쁜 과보가 따른다. 세살 아이도 ‘착한 일을 하면 칭찬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혼난다’는 사실을 안다. 아기도 아는 이 단순한 진리가 뭐 그리 대단한가 생각하겠지만 중생은 업의 엄정함을 모른다. 업이 무서운 이유는 첫째 살아있는 내내 짓기 때문이고, 둘째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고, 셋째 반드시 그 결과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과 말, 마음가짐 즉 업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모여서 버릇이나 성격, 성품이 된다. 지금의 나는 결국 업의 결과물인 셈이다.


 아일랜드가 배경인 <필로미나의 기적(2014)>에서는 카톨릭 교리가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필자를 영화를 보고나서 업을 떠올렸다. 업이 어떻게 성품이 되는지를 세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마틴 식스미스의 책 《읽어버린 아이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필로미나의 기적》으로 출간되었다). 



사진 2. 영화 포스터



 마틴 식스미스는 BBC 기자 출신으로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통신국 국장으로 근무했다. 2002년 해고나 다름없는 강제 사직을 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필로미나의 사연을 듣게 된다. 


 필로미나의 이야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간다. 카톨릭 문화가 강한 아일랜드에서 미혼모와 사생아는 타락한 죄인으로 여겨졌다. 미혼모들은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배척받고 수녀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은 수녀들의 비난과 감시를 받으며 감금과 다름없는 3~4년을 보냈다(물론 미혼모들을 정성으로 보살펴준 좋은 수녀들도 있었다). 출산은 전문 의료인도 없는 수녀원에서 이뤄졌는데 어린 미혼모들은 목숨을 건 출산을 해야 했고(초산인 경우가 많았다) 출산 도중 죽는 경우도 빈번했다. 필로미나 역시 태아가 거꾸로 자리를 잡아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수녀원장은 의사를 부르는 대신 고통으로 속죄하라며 출산을 강행한다(결국 아이는 다리부터 나왔고 다행히 둘 다 무사했다). 해산 후 산후 조리 기간이 끝난 엄마들은 자신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수녀원을 위해 온종일 고된 노동을 해야 했으며, 하루 중 짧은 시간에만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만 미혼모를 가혹하게 대한 건 아니다. 미혼모의 처지는 전세계적으로 비슷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정부와 교회가 합작하여 아이들을 팔았다는 사실이 문제다. 수녀원은 미혼모에게서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모든 걸 교회에 위임한다는 서류를 받았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미혼모들은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해야 했는데 이 서류는 훗날 교회에 좋은 방패막이 되었다. 아이들은 미국이나 카톨릭 국가의 부유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이 자랄 환경은 어떤지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기부금 명목의 큰 돈만 내면 쇼핑하듯 원하는 아이를 데려갈 수 있었다. 미혼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언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필로미나 역시 그렇게 아들을 뺏겼다. 시간이 지나도 필로미나는 아이를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수녀원에 찾아갔지만 수녀들은 아이의 행방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50년이 지나 노인이 된 필로미나는 마틴의 도움을 받아 빼앗긴 아이를 찾아 나서게 된다. 



사진 3. 실제 필로미나 리와 영화에서 역을 맡은 주디 덴치, 오른쪽은 아들의 사진



 마틴과 필로미나는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취향도 완전히 다르다. 마틴이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BBC 기자, 정부 관료 등으로 일하며 화려하고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필로미나는 30년간 간호사로 일을 했지만 고급 호텔과 BMW, 비행기 일등석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공항에서 둘은 서로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데 마틴은 러시아 10월 혁명에 관한 책을, 필로미나는 통속로맨스소설을 보여준다.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은 두 사람이 계속 붙어 다니다 보니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 후반 두 사람은 결정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돌고 돌아 사건의 중심에 있던 수녀를 만난 두 사람. 마틴이 수녀에게 과거의 일을 매섭게 추궁하자 필로미나는 조용히 외친다. “그만, 그만!” 그리고 오히려 신부에게 소란이 피워 죄송하다고 사과한다. 필로미나는 화를 내는 마틴에게 말한다 “찢긴 가슴을 추스리기 힘들지만 누굴 미워하며 살긴 싫어. 당신처럼 되기 싫어. 당신 자신을 봐. 미워하면 나만 망가져.” 필로미나는 수녀를 용서하고 조용히 수도원을 나온다. 


 필로미나는 분노 대신 용서를 택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겸손하게 살아온 필로미나는 과거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간 살아온 삶의 방식, 즉 업의 방식대로 사건을 매듭짓고 미래로 나아간다.


 마틴은 교양도 부족하고 일희일비하는 필로미나를 은근히 깔보며 특종을 잡을 욕심에 안하무인으로 굴곤 했었다. 자신이라면 절대로 수녀들을 용서할 수 없을 거라며 필로미나와는 다른 입장을 내세우지만 영화 마지막에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거물들만 상대하느라 거만함의 업이 몸에 밴 그가 처음으로 필로미나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사진 4. 실제 필로미나 리와 마틴 식스미스




 노인이 된 수녀는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미혼모들이 고통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며 결단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수녀는 아마도 여생을 수녀원에서 편히 지낼 것이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잘 살고, 선한 일을 한 사람이 고통 받는 걸 많이 본다. 이럴때마다 정말 업보가 있는지 의심이 들곤 한다. 


《법구경》 〈제9 악의품〉에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설사 악한 자라 하더라도 아직 악행의 과보가 나타나지 않아 행복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악업의 결과가 나타날 때 그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리라. 비록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직 선행의 과보가 나타나지 않아 고통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업의 결과가 나타날 때 그는 크나큰 이익을 즐기리라.’ 업보는 반드시 돌아온다. 다만 중생은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대중뿐만 아니라 불자들도 업을 과거에 지은 나쁜 행동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었나’라며 자꾸 전생의 업을 탓하곤 한다. 악업과 전생에 초점을 맞추면 숙명론에 빠질 위험이 크다.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건 선업과 현재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선업을 쌓아 더 나은 삶을 향해가라고 하셨다. 그러니 알 수도 없고 추적할 수 없는 전생의 업을 소환할 것이 아니라 선한 행동으로 지금의 삶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선업만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과거의 악업을 잊으라는 건 아니다. 악업을 뉘우치고 다시 행하지 않겠다는 진정한 참회가 있어야만 악업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일담을 이야기 하자면 마틴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2013년 아일랜드 총리는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무서운 뉴스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이 선업의 결과일지 모른다고. 선업의 과보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치고 있는지 모른다고. 훗날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건 재물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선업이다.



(2023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월간 봉은판전> 게재)





참고자료

1. 『필로미나의 기적』,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 옮김, 미르북컴퍼니



사진 출처

1. 단대신문,''훈민정Talk! 41. 불교용어',  2016년 10월 11일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4338

2. 다음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0477

3.Dailymail.co.uk

https://www.dailymail.co.uk/femail/article-2482269/Philomena-Lee-played-Judi-Dench-new-film-forgives-nuns-stole-son.html 

4. Independent.ie

https://www.independent.ie/entertainment/movies/philomena-lees-tragic-search-for-her-lost-son/295786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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