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째 되는 날, 딸아이가 할머니를 꼬드겨 인형을 산 걸 알고(인형이 너무 많으니 더 사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성질이 나서 맥주로 화를 달래 볼까 잠깐 유혹에 빠졌지만 브런치에 금주 일지 쓴 게 아까워서 참았다. 요놈의 지지배가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어 그냥!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4일째를 맞이했다.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힘들게 뭐가 있나 싶겠지만 첫날이 제일 힘들고, 다음으로 초반 일주일 동안 참는 게 힘들다는 것이 이 금주 업계의 불문율이랍니다.
4일째는 소식지를 만들며 심신을 바쁘게 만들었다.
매월 말, 지인 10명에게 소식지를 보낸다.
소식지. 말 그대로 지극히 사소한 내 소식이 담겨있는 '개인적 뉴스레터'이다.
A4 2장에 사진과 글을 넣고, 집 잉크젯 프린터기로 출력해서, 규격 편지봉투에 넣은 후, 우체국에서 일반 우편으로 보낸다.
메일이나 SNS가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내는 것이 내 소식지의 포인트.
2022년 1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처음부터 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2014년 2월,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조우(@artist_jowoo) 언니는 매달 소식지를 보내주셨다(지속적으로 인연이 이어지는 건 다 부지런하고 세심한 언니의 덕이다).
A4 한 장의 소식지에는 언니가 작업한 작품(조우언니는 화가다)과 근황이 들어있었다.
사는 곳이 멀어서 일 년에 끽해야 1~2번 볼뿐, 그렇다고 전화나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는 것도 아니기에(정말 친한 몇 명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안부인사차 연락하는 건 매번 민망하고 닭살스럽다...)
소식지를 통해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본다는 건 굉장히 반갑고도(우편함에 꽂힌 소식지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마운 일이었다.
게다가 언니는 직접 우표를 봉투에 붙여서 보내주었다. 근래에 우표 보신 적 있으십니꽈~
그렇게 몇 년간 일방적으로 '수신'만 하다가 나도 '발신'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2021년 12월이었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툴은 사용하지 못해서
CANVA(캔바)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작업한다. 있는 템플릿을 변형해서 쓴다. 무료라서 을매나 좋게요~
내 소식지에는 그 달에 한 일과, 읽었던 책, 그리고 한 가지 주제로 쓴 A4 반 페이지 분량의 글과 단신뉴스가 들어간다.
아래는 2023년 2월 소식지.
2023년 2월 소식지
작업하는 데는 반나절 정도가 걸린다. 지인들에게 쓰는 글이라 편하게 쓰다 보니 다른 글에 비해 부담이 적어 속도가 빠르다(그만큼 오타에 비문도 난무한다는....).
글 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사진 고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걸린다. 평소 사진을 너무 안 찍다 보니 있는 사진, 없는 사진 쥐어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7명에게 보냈는데 근래 세 명이 추가되면서 총 10명이 되었다. 친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되지는 않을 것 같다(영세한 가내수공업자이기에 10명 넘으면 힘들다).
소식지를 다 만들면, 출력하고 나서 봉투작업을 한다.
봉투 하단에는 받는 사람 이름과 주소를 손으로 쓰고
상단에는 내 주소가 적힌 라벨을 붙인다.
그전에는 상단 하단 다 손으로 썼는데 막판에 가면 힘들어서인지 안 그래도 세미 악필인 글씨가 더더더욱 개발새발 되기에
내 주소는 프린트한 걸 풀로 붙인다(스티커 형식의 라벨지는 비싸기 때문에 쌩노동으로 원가 절감).
소식지는 일일이 비닐봉지에 넣은 후(환경을 생각하면 이러지 말아야겠지만 잉크젯 프린트기로 출력하기 때문에 비에 젖거나 습도 높은 날에는 잉크가 번져서 어쩔 수 없다)다시 봉투에 넣는다.
봉투 입구를 풀로 붙이면 끝. 예전에는 테이프로 붙였는데 이렇게 하면 요금이 더 비싸다는 걸(그래봤자 몇 원이지만) 알고 나서는 풀로 붙인다(원가절감에 진심인 가내수공업자).
우체국에 가서 일반 우편으로 보내면 끝. 대개 2~3일이면 도착하는데 대구 사는 친구는 지난달에 이주나 지나서 받았다고 한다(대구가 옥천 허브도 아니고 뭔 일이 있었나요?).
2년간 말일이 되면 항상 같은 우체국에 가서 부치다 보니 이제는 "등기 아니라 일반 우편 맞나요?"라고 물어보지도 않으신다. 이렇게 하면 소식지 작성부터 발송까지 끝.
원래 반나절이면 작성을 다 하고 오후에 발송하는데 이번달에는 아이가 옆에서 쉬지 않고 쫑알거리며 방해하고(방학입니다...) 새해라 디자인을 변경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하루종일 잡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쓸데없는 내 일상다반사를 적은 소식지를 왜 보내는 걸까.
아마도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지 않고, 관계에 에너지 쏟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친구도 많지 않고,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살다 보니
문득 이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 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인들이 소식지를 서두로 말을 건네어(대개는 카톡으로)
내가 만든 가상의 적막상태가 깨지면
내가 혼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다.
온전히 혼자였던 적도 없고, 외로움에 사무친 적도 없었는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건
나이가 들어서 센티멘털해진 건지 아니면 어른이 되려고 천 번을 흔들리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식지를 쓰는 나로서는 한 달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받는 이에게는 '우편함을 뒤적이고, 언제 오나 기다리는 기쁨'이 된다고들 하니 꾸준히 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