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영 Jan 31. 2024

일일 금주 일지 3

금주 시도 10일째 - 등록금 덕분에 성공

2024년 1월 29일


금주 10일째다. 오늘은 다른 날들보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술 한잔으로 가슴속 불안과 잡다한 감정들을 잠재우면 딱 좋을 날이건만 참았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지금 술 마시는데 쓸 돈이 없거든!!  


오늘은 대학원 등록금 내는 날.


그렇다. 만 41살의 시들시들한 아줌마는 파릇파릇한 대학원생으로 학교를 다닐 예정이다.


등록금 납부는 오전 9시부터 가능했지만 쿠팡에서 지난 금요일에 일한 알바비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돈을 보냈다. 600만 원에 육박하는 입학금+수업료에 더하여 학술연구비와 학생회비까지 냈는데 이 돈이 뭐에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내면 나중에 혜택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협박or경고의 안내문구를 읽고 냉큼 보냈다.  66~88 의 작지 않은 상체 사이즈를 보유했지만 그 안의 마음 사이즈는 11~22 정도로 소심心뽀짝한 아줌마이니 더럽고 치사해도 하라는 대로 한다. 내 결단코 졸업 전까지 저 돈의 혜택을 보리라.     


남은 돈으로 50만 원짜리 노트북을 사고, 2학기 등록금에 보태야 하기에 내 통장은 사실상 잔고 0원이 되었고, 목돈이 주는 황홀경에 취해서 어깨가 5cm 높아졌던 나는 다시 걸뱅이 신세가 되었다. 2025년도 등록금은 아직 한 푼도 못 모았다는 점에서 보면 '잔고 0원과 걸뱅이 신세'는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여 인생의 밑바닥 역사를 갱신 할 가능성이 크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 강사에게 "저 올해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다녀요"라고 했더니 "음, 선생님께 어울려요."라고 말씀하셨다.


에... 제가요?


그분이 음주가무와 뻘짓으로 점철된 지극히 세속적이고 한심한 나의 20~30대를 보았다면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은 몇 년간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내가 종무원으로 일했다는 것과 사찰 사보에 글을 쓰고 있으며, 향후 불교계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똥고발랄한 포부를 알고 있어서 불교 공부하러 대학원에 간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은 이렇게 늙어서, 굳이 불교를 공부하러, 더욱이 돈도 넉넉지 않으면서 대학원에 간다는 걸 무모하게 여기셨고, 그것은 100% 정답이었다.


내가 앞으로 주야장천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싶은 분야는 불교 글쓰기와 강의인데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데다가 학부 전공도 불교가 아니어서 내부적으로는 지식의 한계가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신뢰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공부도 하고 학위도 따고, 이거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것 아닌가. 물론 착취당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대학원생의 처지를 각종 짤과 뉴스에서 엄청나게 봤지만 빛나는 졸업장과 석사학위가 개뿔도 없는 내 상황을 타개할 최선의 돌파구로 여겨졌기에 착취당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대학원생이 될 위기를 감수하기로 했다(아니길 바란다 정녕!).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유가 없다. 지금도 공부하기에 딱히 좋은 상황은 아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초딩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귀에 피가 나도록 엄마를 부르고, 침 마를 새로 없이 조잘대는 나이이기에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 한 고민은 '애 저녁밥을 어찌해야 하나'였다. 대학원 수업은 저녁에 있고, 집에서 5시에는 나가야 하기에 '애 밥 챙겨주기'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나'를 뛰어넘는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남편이 매일 정시 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간의 경험상 남편이 차리는 저녁밥은 라면 아니면 시장에서 사 온 전기구이 통닭이고(다른 집 남편도 비슷하다 하더이다) 그렇다고 애를 수업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동짓달 기나긴 밤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수업이 금요일이라면 시어머니께 맡기면 되는데 월~화요일에 수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서(정확하진 않다) 이 것도 패스. 여전히 고민 중이다.


 이런 데도 대학원 입학을 강행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공부하기 좋은 상황이 될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애만 보면 안전과 관련해서 걱정이 한 보따리인데 아이가 더 큰다고 해도 초딩이면 각종 걱정과 챙겨할 것들이 두 보따리이고, 중학생이면 공부 및 중 2병 관리한다고 걱정이 네 보따리, 고등학생이면 공부 및 입시 알아본다고 걱정 여덟 보따리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한데 이렇게 아이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가는 나는 새치 염색으로 흰 머리를 덮어 씌운 50대가 되어서야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때가 된다고 해서 내 인생이 평온해질까. 노쇠한 양가 부모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고, 아직 내 집 마련에 성공하지 못해 전세에서 전세로 떠도는 신세이기에 향후 십 년 간 내 인생에는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팡팡 터질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하여 공부하기 좋은 때를 기다리며 한없이 나이 먹기보다는 지금 당장 질러버리기로 했다.


 수년간 생태강사 및 최근 두 달간 쿠팡 알바를 하며 모은 돈은 겨우 일 년 치 등록금 밖에 되지 않는다(이 귀한 돈으로 괜히 주식투자했다가 좀 말아먹었다). 남은 3학기 등록금은... 이것도 뭐 앞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내 상황을 듣고 친구가 '너 참 간 크다.'라고 말했는데 아니야, 난 그냥 무대뽀인가봐. 머릿속에 미친X과 사탄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강강술래를 돌고 있나 봐. 아님 내가 앞뒤양옆 없는 미친갱이 본체이던가.


 방학중에 열심히 쿠팡 알바를 뛴다고 해도 등록금의 아주 일부분일 테고, 학자금 대출 역시 일부 밖에 되지 않는다. 동국대 학부 출신이 아니어서 장학금 혜택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앞으로 성적 장학금이나 기타 장학금을 받을 기회는 있지만 불확실하다.



이런 걱정들과 우려의 숲을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동굴 속 멀리 대학원으로 가야지 별수 있나. 2500년간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까지 아시아를 휩쓴 불교에서 나는 내 길을 보았다. 별의별 사연과 별의별 사람들이 얽힌 불교라는 광맥에서 캐낸 이야기를 내 스타일로 풀어내기 위해 나는 대학원에 간다. 지금 두 손을 모아 기도할 건 끝없는 용기와 지혜보다는 등록금인데.. 뭐, 차차 고민해 보렵니다. 영 안되면 내년에 휴학해도 되고, 일단 올해는 고고씽입니다.


        

등록금 걱정하느라 술을 못 마셔서 금주 10일 차 성공. 참 잘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일 금주 일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