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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ril Oct 06. 2020

영어를 내 언어로 만들었던 3가지 방법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어요?

나는 약 7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사진작가인 아버지는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를 어린 나이부터 '남의 나라'라는 인식이 없어지도록 데리고 다니셨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맨발로 책상을 뛰어다닌다고 소문난 사고뭉치 딸 때문에 한 달마다 학교에 불려 오던 엄마는 캐나다 동부의 작은 섬, 그중에도 2시간을 더 차 타고 들어가는 시골마을로 유학 보내셨다.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일부를 포기하시고 딸내미 교육에 힘써주셨다. 교육인지 한국에서 못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라고 보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전자사전 하나 믿고 혼자 캐나다로 떠났다.


전자사전으로 모든 통역을 이끌었다. 알아듣는 건 어찌어찌했었는지라 호스트 아줌마가 뭘 물어보면 단어를 전자사전에 쳐서 보여주는 걸로 대답했다. 그렇게 한두 달 버텼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작은 섬에 동양인을 보는 것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처음이었다. 첫째, 둘째 날 모두의 관심을 받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영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졌다. 환경이 달라져야 영어를 잘한다고 하던데, 환경이 나를 절박하게 만들기 때문이었구나. 덩그러니 영어를 쓰는 나라에 가면 자동으로 영어를 잘하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에도 난 늘 극과 극을 달렸다. 성적이 중간을 가는 과목은 없었다. 영어와 수학, 과학이 재밌어서 그 과목들을 잘했고, 즐겁지 않았던 언어, 국사 공부는 억지로 해도 해도 늘 바닥을 기었다. 13살에 나는 이렇게 영어를 시작했다.



첫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대사가 많은 영화가 아닌 전쟁영화, 뮤지컬 영화를 봤다.


DVD player가 막 나오던 시절이었다. Pearl Harbor(진주만)을 몇 번씩이나 돌려봤다. 케이트 베킨세일이 너무 예뻐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처음 볼 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볼 땐 영어자막을 켜서 들리는 단어만 캐치하려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장면은 다시 보면서 같이 보던 캐나다 친구를 좀 귀찮게 하기도 했다. (대신 나는 '이 죽일 놈의 사랑'을 통역해주고, 켈리는 비와 사랑에 빠졌다.)

진주만의 여주인공 Kate Beckinsale


누군가 영어로 꿈을 꾸면 그때부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매일 밤 영어로 꿈을 꾸게 해달라고 빌었다. 웬걸! 같은 반 외국인 친구들이 꿈에 나타났다. 설레며 대화를 하려던 찰나, 앞자리에 앉은 파란 눈의 외국인 친구는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아직 멀었다.



둘째, 하교 후엔 아주 자극적이던 뮤직비디오 채널(MTV, Much music)을, 밤엔 예능을 봤다.

매일 Much Music TOP 10에 등장하던 Eminem
문화충격을 안겨줬던 Britney Spears 언니

미국과 캐나다에선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욕, 섹시한 춤, 사랑 얘기를 뮤직비디오에 담아주었다. 에미넴은 자신의 부모님 욕을 대놓고 가사에 썼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마돈나는 무대에서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성교육 만화책만 봐도 엄마를 불러대던 한국 학교와는 다르게 성교육을 TV에서, 학교에서 해주고 있었다. 


넋 놓고 보다 보면 어느새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흥얼거리다 보니 가사가 궁금해졌고, 가사를 보고 나니 가사를 넣어 따라 불렀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따라 부르다 보니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게 되고, 가사를 실생활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뜻을 다르게 해석해서 Host 아줌마와 아주 큰 싸움이 난 적도 있다. 


아줌마: Did you do this? (네가 이랬니?!)

나: Not at all! (전혀!) 

아줌마: You are lying! (거짓말쟁이야!)


가사만 따라 듣다 보니 Not at all 이 전부 다 내가 한건 아니야! 일부만 이야!라는 뜻인 줄 알고 이렇게 이야기해서 트러블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장난꾸러기 친구에게 You are the best mistake I've ever made! (Ariana grande 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쓴 노래) 라고 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할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가 좋아하는 팝송 뭐야? 그거 가사 알아? 가사 알고 부르면 그 노래가 얼마나 야한지 알걸? 히히

(싸이월드 시절, 물랑루즈 OST 가 너무 좋아서 가사를 내 프로필에 복사+붙여넣기 했었는데, 동창 남자애가 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 써 논 거냐는 말에 검색해보고 창피함에 몇 날 며칠을 못 잤었다. 'Voulez-vous coucher avec moi, ce soi - 너 나랑 자고 싶니 오늘 밤에')


그리고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예능은 우리나라 예능과 급이 다르다. 우리나라에 슈퍼모델쇼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홀딱 벗겨 모델들을 경쟁을 시키는 예능이 있었고, 동성애 일반인들을 짝지어주는 프로그램부터 양성애로 유명한 연예인과 남녀 각 10명을 펜션에 가둬 누구와 사랑이 이루어지는가를 관찰하는 예능도 있었다. 그야말로 쇼킹했지만 내 관심을 끄는 데에 200% 성공했기 때문에 저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나는 알아내야만 했다. 


High School Musical

+ 어린 아이에게 보여줄 영화로 'High school musical' 강추한다. 순수하면서도 하루 종일 노래가 귀에 남는 디즈니 제작 청소년 영화. 건!전!하고 재미있어서 고등학교 때 전교생이 부르고 다녔다.



세 번째, 필기체를 연습했다.


안 그래도 읽기 어려운데 사람들은 필기체를 휘갈겼다. 아랍어마냥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있어 보이는" 필기체를 써보겠다고 까불었다. 과제를 모두 필기체로 적어냈다. 선생님들은 채점하다가 불러 도대체 뭐라고 쓴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셨지만 굴하지 않았다! 알아보실 때까지 썼다. 지금도 썩 맘에 들진 않지만, 외국인들이 잘 알아봐 준다. 그때 당시 우정장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글씨 잘 쓰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예뻐 보이려고 공책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2004
2020



영어가 좋아지고 나니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영어가 자신 있으니 해외 인턴십을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워하기보다는 Why not? 하며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사실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잘하던 과목처럼, 좋아하고 즐겨야 따라온다. 그리고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살면서 다른 나라 언어를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니까. 다만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무기로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지금도 팝송을 들으며 같은 방식으로 단어를 습득한다. 최근 BTS의 Dynamite라는 곡을 들었는데 도대체가 뭔 소린지 하나도 안 들려서 가사를 보고 나서 들으니 Life is sweet as honey 가 들리더라. 공감하진 못했지만 그래 그렇다고 한다. 오늘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가사 보면서 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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