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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혜 Nov 29. 2023

백인남성이 내게 인종차별 당했다.

화내던 동양인 여성의 고민

  

  

  백인남성 두 명이 내게 "인종차별주의자"라 말했다. 그 말이 박혔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동양인 여성이 백인남성을 인종차별 할 수 있나? 내게 백인남성혐오가 있나?


  백인남성이 동양인을 인종차별 하는 건 숱하게 보고 들었다. 그러나 그 반대 경우는 그날 처음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이 동양인 여성이었다면, 다른 국적의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그들이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백인남성이라서 '더' 화난 것이라면, 이건 인종차별일까?







  서울역에서 두 명의 백인남성이 기차에 탔다. 둘은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가족석에 나와 마주 보고 탔다.) 신나 보였다.


  기차가 출발했다. 떠들고 웃으며 장난을 쳤다. 목소리가 컸다. 30분 정도 지났다. 한 승객이 짧은 영어로 "조용히 해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그들은 "Ewww"라고 대답했다. 더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30분만 참기로 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른 국적의 남자들한테 조용하라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시간이 지났고,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들에게 한국어로 말했다. "저기요 조용히 하세요. 시끄러워요." 열차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어서 그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방금 우리한테 말 건 사람이 쟤야?" / "쟤야 쟤" / "방금 니가 말했어?"


  화가 나서 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네. 뭐요."


  "영어로 말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으니까" / "니가 뭔데 조용히 하라 마라야?" 어쩌고 저쩌고...


  나도 계속 말했다. 앵무새 같았다. 조용히해무새.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시라고요. 시끄럽다고요. 조용히 좀 하세요. 어쩌고 저쩌고. 화를 냈다.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조금 조용해졌다. 이제 그들은 속닥거렸다. 앉은자리가 가까워서 다 들렸다.


성격 지랄 맞네 / 거지 같은 기차 / 쟤 인종차별주의자야








  한국어든 영어든 욕은 참 잘 들린다. 흑흑. 다른 승객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핸드폰을 하고, 귀에 무언가를 꽂고 있다. 기차에서 내릴 시간이다. 도망치듯 내렸다. 내리자마자 친구에게 전화해 하소연했다.


  "아니!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시나요!? 백인남자들이! 저보고! 뻐킹코리안비치래요!"


  내 말을 들은 친구의 반응이 재밌었다. 덕분에 화가 금방 풀렸다. 화가 풀리자 생각이 밀려왔다. 그들의 말대로 내가 인종차별을 한 건가? 내가 왜 그토록 화가 났지? 쌓인 화를 그들에게 푼 걸까? 더 나은 방법은 없었나?


  이 생각들을 대충 안은 채로 두 달이 흘렀다. 뜬금없이 오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맞다. 그날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등치 좋은 백인남자를 무서워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화가 난 승객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게 부끄러웠다.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부끄러웠다.

  확실히 그날 내 행동은 인종과 연관이 있다.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그들이 백인남성이라 더 화가 났다. 그들이 나를 순한 동양인 여자애로 보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성질 더러운 여자애로 보기를 원했다. 그 날 기차 안에서 나도 나를 여자애로 봤다. 자격지심일 수 있다. 내 안에 혐오가 있을 수 있다. 인종차별 일 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차별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당연하다. 차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당하던 피해자가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꼭 '말'로만 차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상황, 맥락, 사람, 태도, 분위기 등, 다양한 것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차별이 발생한다. 그 모호함 사이에서 화 내기란 참 어렵다.


  기차에서의 기억을 계속 붙드는 이유가 있다. 화를 잘 내고 싶기 때문이다. 차별당한 경험은 상처로 남는다. 나는 나를 화나게 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화내고 싶지만, 동시에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화를 내는 건 상대를 아프게 하는 일이다. 아프되 상처로 번지지 않을, 그런 화를 내고 싶다. 그래서 그날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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