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30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
혹시 떨어져도 나 신경 쓰지 말라던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가 전봇대를 오르려던 시각, 나는 굳어버린 핫팩을 꼭 쥐고 있었다. 장갑이라도 가져올 걸 하면서 터버린 손에 입김을 불어댔다.
그때 그는 띄엄띄엄 박힌 짧은 못을 밟고 전봇대를 오르고 있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잡히는 대로 올랐다. 그가 맨몸으로 전봇대 꼭대기에 올랐을 때, 모두의 고개가 그를 향하느라 위로 젖혀졌다. 방금 당신들이 설치한 이 CCTV를 떼내라는 외침에 매트 두 개가 전봇대 아래 놓였다.
그의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위태로워진다. 고압 전선들 사이에서 CCTV를 직접 떼내려 한다. 동료들은 기겁해 울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 질렀다. 그제야 “불법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던 시가 반 발짝 물러선다. CCTV를 떼냈다.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공무원이든, 무심하게 매트를 던져둔 공무원이든, 어쨌든 그들의 중심에 그가 존재했다. 성노동자들이 하루종일 외쳤던 “작업을 중단하라”는 외침에 반응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깟 거 관두고 다른 일 하면 되지 않냐는 말들은 오늘도 내 심장을 깊숙이 찌른다. 그럴 수 없는 삶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봇대 꼭대기에 올라야만 허락되는 삶이 있다.
소중한 걸 지키려는 마음이 불법이 되어버린 곳에서, “나 좀 살자” 하는 성노동자의 절절한 외침은 비웃음거리가 된다.
외면당한 외침은 죽음을 걸고 재등장할 때, (파주)시의 고개를 움직인다. 서서 외치는 것보다는 무릎을 꿇고, 땅에서 외치는 것보다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안전한 몸보다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몸으로, 늘 외치던 그 구호를 다시 외친다.
위험해지면 된다. 그럼, 저들의 뻣뻣했던 고개가 우리 쪽을 향한다. 오늘은 위험해지지 말자던 그들의 다짐은 늘 그랬듯 그날도, 삶을 지켜보겠다는 다짐을 이기지 못했다.
찬 바람에 터버린 손은 핸드크림 몇 번이면 다시 보드랍던 결을 찾는다. 그러나 삶을 지키기 위해 전봇대를 탄 손은, 아무리 따뜻한 걸 쥐여줘도 쉽사리 본래의 결을 되찾기 힘들 테다. 그건 아픔이고, 트라우마다.
삶을 합법과 불법으로 구분 짓는다면, 철거를 멈추라는 그들의 외침은 뻔뻔해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있는 공간에서, 나의 소중한 걸 지켜내며,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과 경험을 쌓는, 그 모든 과정이 삶이라면, 그들의 요구는 오늘도 내일도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