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혜 May 07. 2024

투쟁은 무릎 꿇는 것

4월 19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


  이곳에서의 투쟁은 난잡하다. 소리를 지르고, 맨몸으로 전봇대를 오르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보고, ‘높으신 분들’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져도 본다. 용역 주변을 맴돌며 정해지지 않은 구호를 외치고, 아무 대꾸 없는 공무원, 경찰을 향해 화를 낸다. 최선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하는 투쟁은 다양한 전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막 싸우는 건 아니다. 오늘은 어떻게 버틸지 고민한다. 오늘은 무엇을 잃고, 그 대신 무엇을 얻을지 고민한다. 오늘은 무릎을 꿇기로 했다. “우리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치기로 했다. 나는 안다. 이들이 지금 자신들의 집을 없애려는, 자신들이 누구보다 싫어하는 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공무원, 경찰, 용역에게 화내고 소리치는 것만큼이나 그들에게 무릎 꿇는 것도 중요한 투쟁이라는 걸, 몰랐다.   


  언제나 강하던 동지들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제발 부탁드립니다”라 외칠 때, 나는 멍하니 서서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내가 그토록 중시하던 대의는 바닥에 꽂힌 그들의 무릎 앞에서 붉어졌다. 흠집 하나 없는, 정의로운 연대자로‘만’ 투쟁하려던 내 앞에서 그들은 투쟁을 하고 있었다.


  공무원의 다리를 붙들던 한 종사자의 무릎에 큰 상처가 났다. 대치가 끝나고 상황이 잠잠해졌을 때, 그는 우리에게 상처를 꺼냈다.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그는 이 상처 또한 우리 싸움의 전략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분명 그가 한 공무원에게 울먹거리며 애원하던 걸 목격했지만, 그가 혼잣말로 “너무 슬프다”라 중얼거린 걸 들었지만, 그냥 그를 따라 웃었다. 이게 우리의 투쟁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