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혜 Jul 11. 2024

기자님 고거슨 유머에유

대전 퀴어퍼레이드 기사를 읽고

  

  지면에서 대전 소식을 만나 반가웠으나 금방 낯부끄러워졌다. 맥락없이 쓰인 유머 때문이었다. 지난 7월 6일, 대전 소제동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충청도 사투리로 쓰인 센스 있는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붙었다. ‘성심당은 저짝 퀴퍼는 이짝이유’, ‘퀴어는 사랑이쥬’ 등. 사람들은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웃음과 함께 “대전답다”는 말이 오가던 현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충청도 사투리를 활용한 선전은 사투리가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유대감을, 사투리가 어색한 외지인들에게는 연대감을 선사했다.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한겨레의 7월 8일 자 기사는 읽는 사람을 낯부끄럽게 만들었다. 대전 퀴어퍼레이드 기사에 기자의 충청도 판타지를 부여한 것이 문제일까. 기사에 등장한 집회 참가자들 중 몇몇은 혐오세력을 언급했다. 그중 한 참가자가 “충청도라서 그런지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분들도 정말 점잖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문구가 그대로 기사 앞에 실렸다.


“반대세력도 점잖아”



#정말 점잖았을까?

  퀴어퍼레이드는 매년 혐오세력과의 마찰을 겪는다. 행사 준비 단계부터 행사 당일까지, 퀴어를 향한 혐오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대전퀴어퍼레이드는 어땠을까. 행진 시작 전, 한 단체가 스크럼(여러 사람이 팔짱을 껴 인간 띠를 만드는 행위)을 짜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았다. 행진이 시작되자 행진 대열을 향해 욕설과 함께 소리 지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행진대열이 시내에 들어섰을 때, 한 남성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점잖은 혐오는 없었다.


  다만, 퀴어퍼레이드에는 혐오세력의 집회 방해 및 공격을 하나의 ‘이벤트’로 여기고 되려 즐기는 문화가 있다. 이를테면, 참가자들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사람을 향해 집회 참가자들이 박수 치며 환호하는 식이다. 자신들을 향한 공격에 환호를 보낸 참가자들은, 그 기세를 이어 다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충청도라) 혐오세력도 점잖은 것 같다”는 집회 참가자의 발언은 말 그대로, ’혐오세력이 점잖다‘는 피드백이 아니다. 유머다. 혐오세력의 규모가 서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점과 혐오세력이 기승을 부려도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는 의지를, “(충청도라) 혐오세력도 점잖은 것 같다”라는 유머로 표현한 것이다.


#유머는 유머로

  나는 지역 관련 유머를 좋아한다. 대전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몰라도, 대전이나 충청도를 소재로 한 타 지역 사람들의 유머를 좋아한다. 그들이 우리 지역을 ‘유머로써’ 어떻게 표현하는지 관찰할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허나 기사는 대화가 아니기에, 유머를 기사에 담을 때에는 어느정도 맥락을 언급해줘야 한다. 유머를 표현하는 사람이든 받아들이는 사람이든, ‘해당 발언은 유머이며 그렇기에 과장과 왜곡이 존재한다’는 인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유머를 받아든 사람은 이 발언이 정보전달인지 뭔지 모를 애매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대전 퀴어퍼레이드에서 오가던, “여기 혐세(혐오세력)는 점잖네”하는 발언들은 유머다. 퀴어 혐오자들을 향한 그들의 유머를 기사에 실패없이 녹이려면, 유머를 옮겨적기 전에 명확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혐오는 점잖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혐오가 점잖기로 유명한 충청도인의 혐오일지라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