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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Dec 23. 2022

속궁합이라는 권력의 문제

그는 나와 이혼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속궁합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쌓여온 문제들로 인해서 이혼을 하자고 결정한 이후였고, 그가 속궁합 얘기를 꺼낸 건 우리 대화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는 말했다. “나 이제 겨우 서른 넷인데, 계속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불쌍하잖아?”


나는 그의 입에서 속궁합이 안 맞다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욕을 했을 때, 물건을 던졌을 때와는 다른 모욕감이 들었다. 그 모욕감은 수치심에 가까웠다. 날아오는 욕과 물건에는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속궁합이 안 맞다는 그의 말에는 숨고 싶었다. 마치 ‘자격미달’이라는 꼬리표가 나에게 붙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1년이 넘게 섹스리스였다. 동거 1년, 결혼 2년 반 치고는 긴 시간이었다. 그와 섹스하고 싶지 않았던 건 여러 이유였다. 그가 나에게 욕을 한 날이면 어둠 속에서 침대에 엎드려 울었다. 눈앞이 캄캄한 채 울던 침대 위에서는 아무런 욕망이 들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만지고 나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면 그 어둠 속의 내가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그럼 나는 적당히 쪽 하고 키스를 끝마치거나, ‘아, 이제 할 때쯤 됐다’ 하는 생각이 들면 그의 손길에 응하곤 했다. 내 욕망이라기보다는 의무감이었다. 그래도 부부인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는 아이를 원했다. 나도 아이를 원했으나 당장은 이루고 싶은 게 더 많았다. 일하는 단체에서 활동도 더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고, 박사과정 공부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서른도 안 됐다. 한편으론 내 미래가 뻔히 그려지기도 했다. 이미 그와 나의 월급은 세 배 넘게 차이가 나고, 그는 더 많은 임금을 무기 삼아 나에게 더 많은 집안일을 요구했다. 아이가 생겨 돌봄이 필요하다면 그보다는 내가 훨씬 더 많은 걸 포기해야 할 터였다. 그가 욕을 하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면서는 아이를 생각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세상에 아직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욕하는 아빠를 선물로 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밤마다 피임약을 삼켰다. 그건 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는 콘돔을 쓰면 사정을 하지 못한다.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하는 섹스를 위해 매일 피임약을 삼키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생존 욕구를 느꼈다. 그건 위기 경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그의 성기는 딱딱해지지 않았다. 잠깐 딱딱해지다가도 금세 풍선에 바람 빠지듯 힘없이 늘어지곤 했다. 물렁해진 그의 성기가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움직일 때는 통증을 느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의 성기가 흐물흐물해진 데는 내 책임이 큰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있는 기술 없는 기술을 다 짜내서 그의 사정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팔도 아프고 입도 아프고. 그야말로 노동의 현장이었다. 이것도 집안일의 일종인 걸까 생각했다.


그는 비뇨기과에 가서 발기부전 치료약을 타왔다.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발기부전이라는 건 그 자신에게도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을 거다. 의사가 심리적 요인이 크니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는 말을 그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의 흐물흐물한 성기가 나 때문인 것만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내 가슴이 작아서일까, 내 움직임이 자극적이지 않아서일까, 더 야한 말을 했어야 하나. 그와 섹스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작 나는 꽤나 오랫동안 섹스를 빨리 끝내기 위해 오르가즘을 연기하고 있었음에도. 그와 하루에도 몇 번씩 섹스를 하고, 다툼 후에도 섹스로 화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잘 맞았는데. 왜 지금의 너는 발기가 안되고, 지금의 나는 오르가즘을 연기하고 있는 걸까.


그는 나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일주일도 안되어 집으로 콘돔과 러브젤을 배송시켰다. 가방에 발기부전 치료제와 콘돔, 일회용 러브젤을 챙겨 나가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랬어야 했나 싶다. 그때 나는 나와 고양이의 생계 밖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이혼이 새로운 섹스라이프의 시작이었다면, 나에겐 생존과 자립을 건 싸움이었다. 여기서도 우리 사이의 불평등을 발견한다.


그가 나에게 속궁합이 안 맞아서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다고 친구들에게 전하자, 친구들이 말했다. “지는 발기부전인 주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발기부전을 오래 앓았으며, 나 역시 그와의 섹스라이프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나와의 섹스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에서 왜 이렇게 큰 수치심을 느꼈던 걸까. 정작 내 욕망은 통째로 지워버린 채.


그가 나의 일상을 군림하게 됨과 동시에 우리의 섹스는 삐걱거렸다. 폭력의 기억을 흡수해 버린 침대는 더 이상 보송보송하고 로맨틱한 공간이 아니었으므로. 그와 나의 관계가 평등하지 않음을 직감한 순간, 섹스가 노동이 되어버린 거다. 그게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의 발기부전은 나의 ‘섹스 노동’이 시작되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으니. 불평등은 공적/ 사적 영역을 아우르며 여러 상흔을 남긴다. 그의 발기부전 역시 불평등의 산물이었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가 발기부전을 겪었다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대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국의 남성들이여, 발기부전이 두렵다면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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