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 우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한 게 불과 어젠데, 오늘 수도꼭지가 열리고 말았다. 원래 아무 데서나 잘 운다.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는 발레수업 중에도 눈물 왈칵 쏟고 말았네. 순서 기다리는 동안 딴생각하다가 눈물 뚝뚝 흘리다가도 내 순서가 오면 어떻게든 눈에 힘을 빡 준다. 스팟 잡아야 중심을 잡을 수 있으니까. 슬프든, 딴생각을 하든, 눈물을 흘리든 내 순서는 돌아온다. 그럼 또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동작을 하는 거지 뭐. 언제나 내 몸짓의 모양은 맘에 안 들지만 그게 그 순간의 최선이다. 삶이 그래.
삶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늘 가볍게 말해왔지만, 이렇게까지 안될 줄이야. 안정적인 자립을 꿈꾸며 그토록 소중한 동료들과 꿈을 저버리고 이직을 선택했는데 실업자 되기까지 겨우 3개월이 걸렸다. 안정도 없는데, 이젠 전쟁없는세상 상근도 아니고, 상처투성이인 마음만 남아버렸다. 결혼도 그랬다.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이 험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따뜻한 공동체를 꾸리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걱정하는 엄마와 친구들을 안심시키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파티를 꾸리고, 모두를 위해 잘 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3년 후, 그와 소송만 10개월째 하고 있다. 그와 대면할 생각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질 지경이 된 채.
의도와 기대는 늘 순진하고 무해했다. 그 의도와 기대에 최선을 쏟았다. 그런데도 내가 상상했던 결과와는 너무나도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되어 절망에 빠진다. '바라면 안 될 것들을 바랬던걸까? 내 자격이 충분하지 않았나? 노력이 부족했나?' 의심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지금 내 삶이 맘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 내가 기대하고 자신했던 일들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이 나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미안해. 실망시켜서 미안해.
소중히 품었던 기대들과 그것들을 위해 쏟은 최선의 시간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비난은 역시나 제일 쉽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해 본다. 그저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을 뿐이야.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기대한 결과값이 나오지만은 않는다는 걸 마음으로 알아간다. 머리로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으로 아는 일은 온몸이 아프다. 도망갈 수도 없고 그냥 오롯이 겪어낼 수밖에 없어.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모든 순간들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아픈 거라면, 아파야지 뭐. 앞으로도 나는 매번 순진한 기대를 품으며 어리석은 최선을 쏟아내겠지. 아주 지겹도록. 매 순간 정직하게 아프겠지만 스스로를 비난하지는 않겠다. 잘 먹고 잘 살아보려는 착한 마음일 테니까.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눈물 방울이 그렁그렁 맺혀서 눈앞이 뿌예지더라도, 내 순서가 오면 손과 발을 뻗어낸다. 지금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춰내야 한다. 스팟을 잃고,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를르베를 하다가 휘청거려도 그게 그 순간의 최선이다.
그러니 이 서투른 춤을 아껴주기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