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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뭉치 Jan 09. 2024

전문가의 말

부부상담을 제안했을 땐, 우리 관계에 희망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는 화나면 욕하는 걸 멈추지 못했고, 나는 욕을 들으면 싸우고 싶었다. 나는 욕하지 말라고 성질을 내고, 그는 욕하지 말라는 내 요구에 성질이 나서 욕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어느 해의 1월 1일, 싸우다가 다쳐서 혼자 응급실에 갔던 날, 머릿속으로 온갖 시나리오를 그려본 끝에 나는 부부상담을 받자고 그에게 제안했다. 울면서도 본능적으로 진단서를 받아두고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뒀다. 어떤 생각의 결과는 아니었다. 결혼한 지 반년도 안된 시점이었고, 이혼이 우리의 결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안전장치 같은 걸 찾게 되는 위기의식 같은 게 발동했던 거였겠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부부상담 후 관계가 개선됐다는 후기가 많았다. 수많은 상담실의 마케팅일 거고, 관계의 개선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후기 같은 걸 남기지도 않았을 텐데. 내 결론은 그들과는 다르길 바랐으니, 상담이 최선의 결과로 우릴 이끌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하면, 상담쌤이 우리를 바라는 미래로 이끌어주리라고 기대했다.


상담을 받는 내내 우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욕은 반복됐고, 상담쌤 앞에서조차 욕이 표현의 자유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아연실색했다. 그 말을 듣는 게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상담사라는 데 그나마 안도했다. 쌤은 상담실 밖에선 나랑은 쌩판 남인 사람이니까. 파트너가 나에게 욕을 한다는 걸 주위 사람에게 말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하고 고통스러웠다.


그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바뀐 게 있다면, 나의 대응이다. 그가 나에게 욕을 시작하면 몰래 녹음기를 켜는 것. 집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녹음기가 나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처럼 여겨졌다. 욕이 문제라는 걸 적어도 상담쌤은 이해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그를 설득할 수 있게 되면 이 녹음을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한바탕 폭풍을 치르면 한동안은 일상이 무너졌다. 사람들 앞에선 웃고 장난을 치지만, 보도자료 한 장을 쓰는 데 이틀이 걸렸고 그마저도 눈물을 한바탕 쏟아야 쓸 수 있었다. 퇴근하면 집에 가기 싫어 뱅뱅 돌거나, 혹시라도 집안일 핀잔을 들을까 싶어 잔뜩 긴장을 했다. 그는 관계에 개선이 없고, 상담쌤의 말에 동의하는 데 실패하자 상담을 그만두겠노라고 선포했다. 대신 다른 상담실을 알아보자고 했지만, 일상의 바쁨 속에서 그 대안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해 여름, 그의 폭언에 못 이겨 집을 나왔다. 친정집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몇 달을 보지 않았던 상담사에게 혼자 찾아갔다. 원래는 몇 주 전에 예약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선생님이지만, 몇 달 만에 전화한 나에게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쌤은 곧장 시간을 내주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한 내게 선생님은 아주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상담사로서는 이런 말을 하기 어렵지만, 제 동생이라면 저는 이혼을 권하고 싶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혼이라는 걸 상상은 해봤지만, 그게 실제로 내 삶에 닥쳐올 수도 있다는 건 그려보지 않은 일이었다. 상담쌤은 우리를 개선의 길로 이끌어줄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배신감을 느꼈고, 다신 그 상담실에 가지 않았다. 쌤의 조언이 현실이 될까 봐 무서웠다.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문가의 조언은 힘이 있었다. 엄마와 친구들은 수도 없이 그와의 결혼을 말리거나, 결혼 후에는 이혼을 권했다. 그들의 말을 애써 넘겨내며, 우리는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상담사의 말은 내 마음 속의 실낱 같던 희망을 꺼뜨리기에 충분했다. 이혼을 권했던 상담사의 말은 조금씩 내 마음속에 체화되어 갔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이혼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음을 조금씩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 남짓 후에, 우리는 이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의 이혼선언 때문이었다.


그 쌤의 조언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가 바뀔 거라는 희망에 목을 매달고 있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망보다는 행복회로에 더 능한 사람이니까. 다른 부부들의 상담 후기들을 뒤져보며 행복회로를 돌리던 내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건, 못하건, 전문가, 혹은 제3자의 조력은 유효하며 유용하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이혼이라는 것을 구체화한 상담쌤이 야속하고 무서워서 상담실에 발을 끊었지만, 결국 나는 그의 도움과 전문성에 빚을 진 셈이다. 바라는 것이 최선이지 않은 경우도 존재하니까. 바란 결과는 아니지만 최선의 결과에 도달했다. 그 결론으로 이끌어준 상담사에게 뒤늦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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