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천만 개의 도시>
공연 <천만 개의 도시>는 거대 서사에서의 탈피와 열린 구조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는 것을 시도한다. 또한 우리 일상에서 배제된 사람들과 가시화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무대 위에 드러내며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반복적인 일상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것에 그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공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상을 관찰한다는 것 이상으로 그 일상의 상연을 통해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가지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극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연극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어떻게든 반영해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현대인들이 사는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거나 그들을 지나쳐가며 반복되는 일상을 살게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안에서 ‘일상’을 다룬 공연은 그 어떤 공연보다 우리 관객들과 가장 밀접한 공연이 된다. 우리는 우리 일상을 담고 있는 공연에 어떤 기대를 걸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내는 일상과 닮아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만들 수도 있고, 그 일상을 구성하는 환경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시극단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인구 5분의 1인 천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인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연극 <천만 개의 도시>를 선보였다. 누구나 경험하는 삶을 담고 있는 <천만 개의 도시>는 일상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며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로 다가가려 한다.
관객 각각이 가지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있고 북적거리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적막하고 차가운 서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천만 개의 도시’가 가리키는 서울의 이미지가 무엇일지 상상하며 극장에 들어선 순간 어두운 색채에 어딘가 휑한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삭막한 서울의 모습을 무대 위에 올렸겠거니 예상했다. 하지만 무대 위는 점점 사람들의 몸과 말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그다지 삭막하지도 매정하지도 않은 일상의 조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천만 명이 스쳐가는 도시의 모습
<천만 개의 도시>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천만이라는 숫자가 드러내는 복잡함과 다양함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되었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어딘가 어둡고 외로워 보이는 무대는 일렁이는 밝은 색채로 가득 찬다. 삭막한 무대와 밝은 LED 화면의 대비로 시작되는 공연은 수많은 삶과 그 삶이 펼쳐지는 일상 공간 중 마흔일곱 개를 선택해 드러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특별한 주인공도 없고,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 서사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인 광장, 옥상, 버스정류장, 비상계단, 놀이터 등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나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속마음을 듣는 것이 전부이다. 이 대화들 또한 길게 지속되지 않고 관객들을 빠르게 스쳐간다. 각각의 대화들 사이에도 어떤 연관성이나 공통점이 없다.
여러 공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떤 유기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공연을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우리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렇듯 <천만 개의 도시>는 특정한 주인공이 꾸려나가는 거대 서사에서는 느끼기 힘든 일상의 친근함을 선사한다. 이와 동시에 우리 일상과 ‘닮은’ 공연이 아닌 공연 전체가 우리 일상 그 자체라는 인상을 선사한다. 이로써 공연과 우리 삶 사이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공연은 어떤 틀 안에서 전개되는 특정한 이야기, 즉 내가 겪을 리 없는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고정되지 않고 흘러가듯 진행되는 공연은 그 열린 구성을 통해 이야기 안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음을 드러낸다.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일상
인구 천만 명의 다양성이 한데 섞인 도시이지만, 그 안에는 배제로 인해 가시화되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한다. 우리 일상을 비추는 연극 무대 위에도 쉽게 올라가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공연 <천만 개의 도시>는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거하거나 그들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여성과 남성, 노인과 청년, 외국인과 한국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데 어울려 대화하고 교류한다. 이들은 장벽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며 무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공연은 그들의 정체성이 누군가 연기하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임을 드러냈다. 이와 같이 <천만 개의 도시>는 이들을 무대라는 정치적 공간 안에서 가시화하는 데에 있어 대상화나 차별화의 방법을 쓰지 않는다.
또한 <천만 개의 도시> 속 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 공간 내부에 존재하며 주위를 맴돈다. 이러한 장면은 우리가 같은 공간과 세계 안에 존재함을 넌지시 드러낸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지나쳐가고 붙잡으며 그 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메시지 또한 전달하는 듯하다.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기존의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있어 지워지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깨닫고, 일상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인식을 가질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드러내는 공연은 그 핍진성과 보편성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시도한다. <천만 개의 도시> 또한 정형화되지 않은 틀 안에서 파편적이고 짧은 장면들을 이어 붙여 지켜보는 관객의 삶과 가까운 일상을 드러낸다. 이렇게 개인의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들과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의 소통을 보여주는 공연은 정해진 의미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각각 관객들에게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끔 이끈다.
하지만 <천만 개의 도시>를 통해 일상에 대한 무엇인가 다른 감각을 적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공연이 취한 연출 방식은 일상의 단편, 그중에서도 사람들 간의 대사와 그들의 속마음을 말이나 자막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중간에 인간이 아닌 생물들을 흉내 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면이 비슷한 구성으로 반복된다. 공간이 변경된다고 해도 이는 자막으로만 고지될 뿐, 이야기는 변화 없이 같은 무대 위에서 벌어진다. 이러한 구성이 다양한 공간과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데 있어 효과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2시간 30분 넘는 시간 동안 앉아서 보고 있어야 하는 관객에게는 지루함과 피로가 축적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적 환경이나 현실에 대한 고찰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관객들에게 공감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일상이라고 하면 우리와 가장 가깝기에 가장 현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일상을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그친다면 일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함을 관전하는 데에서 오는 피로를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을 단편적으로 묘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일상이라는 소재에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효과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사람들 또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공연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다층적인 일상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에는 아쉬움이 들었다.
<천만 개의 도시>를 보며 우리 일상에 대해 다루는 연극을 통해 일상의 단편을 관찰만 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다채로움과 다면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일상을 둘러싼 현실적인 부분까지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