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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나 Jul 21. 2020

무조건 실패 없이 사랑받는 방법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무거움에 대해 알아가는 법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아지와 고양이, 햄스터같은 동물들이 지구를 지배했으면 좋겠다고 매일 떠드는 류의 인간에 속한다. (그와 별개로, 친구들에게는 넌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개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칭찬일까? 원래 자기 자신은 스스로가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라고들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긴 하다. 벌레도 무서워하기는 커녕 지네를 잡으면 다리 갯수를 센 뒤 놓아주고 비 온 뒤 아스팔트 위로 나온 지렁이도 풀밭으로 돌려보내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모기나 파리는 싫고, 조류 공포증도 있다. 비둘기는 반경 1m 이상 다가오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참새도 힘들 정도로 심하다.


  옛날에는 주먹만한 새끼 강아지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들에게는 내가 참새를 무서워하는 게 더 웃길 것 같다. 그래도 내 친구가 함께 사는 반려 앵무를 만날 때는 비명을 지르거나 주저앉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에도 빠짐없이 좋아요를 눌러준다.

  그냥 그렇다고.




  지금 귀여움으로 밥 값을 내며 내게 얹혀 살고 계신 9살 강아지는, 2살이 조금 지났을 무렵 우리 집에 처음 왔다. 제대로 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고, 동물 윤리니 책임감이니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적도 없던 10대 때였다. 둘째 동생이 막내 생일 선물(!)로 어디서 파양된 강아지를 받아온 게 처음이었다. 엄마와 아빠도 개와 보호자가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고서야 둘째가 벌인 일을 알아차렸다.

  이미 온 걸 어쩌겠냐며, 그렇게 초코는 엉겹결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다만 나는 그 때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고, 둘째도 입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막내는 너무 어렸고, 4kg의 푸들은 마당에서 자랐다. 시골 마을의 개들은 품종 상관 없이 집 앞 나무 개 집에 묶여 자라는 게 당연한 거였다. 지금은 너무 후회하지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여러 사건들이 지나면서, 나도 나이를 먹었고 우리 집 개도 나이를 먹었다. 개는 아빠와 단 둘이 시골에 있었고, 나는 서울 살이에 적응하느라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동안 나와 개는 여러 곳을 다녔고 아프기도 했다. 23살의 크리스마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초코를 안고 엉엉 울었다.

  200만원이 적힌 동물 병원 영수증보다 하루 입원 시킨 사이 병원 유리벽을 하도 긁어 들려버린 피 맺힌 갈색 발톱이 더 충격이었다.


  내 생각보다, 이 작은 갈색 털뭉치에게 나는 더 큰 존재였다.




  나는 지금에 와서도 좋은 반려인은 아닌 것 같다.

  위에서도 썼듯이 과거에 지은 죄는 물론이고, 엉엉 울며 반성한 뒤에도 귀찮거나 비가 오거나 일 때문에 힘들다는 이유로 산책을 자주 건너 뛴다. 놀아달라고 말 거는 -진짜로 말을 건다. 웅얼웅얼 왕왕하면서- 개에게 여기 아파트야! 하며 콧잔등을 톡톡 때리기도 한다. 발 밑에 개가 산지 벌써 7년이 넘어가는데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발을 밟아버릴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 집 개는 너그럽게도 10분 정도 멀찌감치 앉았다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용서해준다.


  백수가 되면서, 둘째 동생이 유기·구조견 임보(임시보호)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잘했네. 그게 내 대답의 끝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 단체에 내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인스타그램 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 나를 동생이 추천했다고 했다.

  그렇게 연락을 시작했으나 어쩌다보니 인스타그램 관리는 다른 사람이 맡게 됐고, 단체의 대표님으로부터 내가 사진을 찍으니 구조견들의 해외 입양 사진(출국 사진 혹은 입양 홍보용 프로필 사진)을 찍어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백수고, 큰 맘 먹고 산 카메라는 놀고 있으니 안 될 것 없지, 하며 수락했다. -그리고 지금은 코가 꿰인 것 같다.-


  인천 공항으로 모이라는 말에 지하철을 타고 오랜만에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이라는 단어와 공항에서 나는 냄새는 늘 나를 설레게 만든다. 내가 타는 비행기는 아니었지만.

  구조견들은 대부분 아주 크다. 20kg은 족히 나가는 사이즈다. 그리고 대부분 한국에서 입양되지 않는 진도 믹스가 많고, 개고기를 위한 농장에서 구조된다. 사실 평생을 살면서 알 필요는 없는 내용들이었다. 내가 개를 키우고 있다 하더라도.


  공항에 내려 만난 네마리의 강아지들은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귀여웠다. 내가 개를 좋아해서라는 이유만은 아니고, 그 애들이 나를 더 좋아해서 귀여웠다. 나는, 개고기 농장에서 구조된 진도 믹스 대형견은 사람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내가 무서움을 느낄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내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와서 얼굴을 핥아주던 커다란 강아지 네마리는, 딱 맞는 켄넬에 실려 카고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한 번도 짖지 않았다.


  이후로도 몇 번의 해외 입양 출국, 입양 프로필 촬영 등을 다녀올때마다 현관 비밀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달려오는 작은 우리 집 개를 한참 안아준다. 참을성이 없는 9살 개는 금방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내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내가 무엇을 해주었고 어떤 것을 주었느냐에 관계없이 그냥 내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 세상을 나로 채워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에어컨도 틀지 않은 여름에 털로 뒤덮여 헥헥거리면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이 작은 존재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내 세상은 네가 아닌 것들로도 가득하지만, 너의 세상에는 가득히 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될 때, 가끔 눈물이 날 것 같은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귀찮음에 자주 진다.

  산책은 이틀에 한 번 나가고, 장마철에는 일주일도 넘게 안 나간 적도 있다. 매일 눈곱 닦아주는 게 귀찮아 다 굳은 눈곱을 떼준답시고 아프게 하는 일도 자주 있다. 발톱 깎다가 가끔씩 피도 본다.

  그래도 다시 초코야, 하고 손을 내밀면 머뭇대며 살포시 올려주는 꼬순 발을 사랑해.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야하면 사료를 한 포대 짊어지고 떠나야지.


  어쩌다보니 나에게도 이 작은 강아지가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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