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나 Aug 11. 2020

도쿄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철없을 적 내 기억 속에 비행기 타고 가요.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불의를 발견하고 정의를 실행할 용기는 물론이요, 교복을 입던 시절 수업 시간에 손 들고 발표하는 정도의 용기도 내겐 없었다. 관심받고 싶어 하지만 막상 관심을 받으면 부담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세미 관종으로 살아온 인생.


  고등학교 진학도, 대학교 과 선택도 생각해보면 내 의지대로 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게,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할래?'라는 선택지를-당연히 선택지는 하나였지만- 주었을 뿐이었다.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사람. 물론 안된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일이든 바로 포기했다.

  그래서 난 내 마음대로 한 것도 하나 없이 누군가를 원망도 못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첫 글에 썼듯이 나는 무언가를 그만두겠다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해서 얼떨결에 존버를 해버리고 마는 우유부단함과 미련의 끝판왕 같은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전의 나는 한국을 떠나겠다고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웠던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가 대단하다(혹은 미쳤냐)는 말을 수십 차례 듣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겠지만,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친구가 들려준 일본 밴드 노래에 푹 빠진 뒤 그 밴드 노래를 달달 외울 때까지 들으면서부터였는데, 물론 일본어는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3줄짜리-일본어, 발음, 한국어 번역- 가사 번역본을 보면서 불경이라도 읊듯이 달달 외운 것뿐이었다.


  원래 음악은 좋아했다.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해서 취미로 홈 레코딩도 했었다.

  한 곡에 꽂히면 한 곡 반복으로 3개월도 듣는 사람이라 그렇게 수백 곡을 외우고 콘서트 영상들을 보고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예능들도 몇 개 찾아보다 보니 어느샌가 자막 없이도 10분 내외의 영상은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일본어 공부를 어떻게 시작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꽤 있는데, 진짜 할 말이 없는 게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알아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쓰고 읽기는 불가능)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다가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중에 가장 사이가 좋았던 언니가 어느 날 카페로 불러내서 나갔더니 워킹 홀리데이 신청서를 쓰자고 했고, 나는 홀린 듯이 마감 하루 전 워킹 홀리데이 신청서 및 자소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당연히 떨어졌다.

  내가 얼마나 아무 생각이 없었냐면, 언니는 붙었고 나는 떨어졌는데 '떨어졌으니까 다시 도전해야지!' 하고 다음 분기에 또 신청서를 내러 갔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워킹 홀리데이를 가야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다음 분기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문제는 비자를 받고 나서였다.

  여권에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생겼고, 비자를 받은 날짜로부터 1년 내 출국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심지어 일본어도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회사를 다니며 시간은 지났고, 언니가 워홀 비자로 출국했다. 그리고 나는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출국 직전까지 회사에 다니면서 나는 9시에 출근해 기본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일본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고, 새벽 첫 버스를 타고-새벽 버스는 할인이 된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회화 학원을 다녔다. 4년을 일했어도 생활비에 급급해 모아놓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주말 알바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일본 월세방을 계약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도쿄행 편도 티켓을 샀다.

  여기까지 준비하면서도 나는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가서 무얼 할지 같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가고 싶었고, 준비가 됐고, 내가 원하는 걸 해 볼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 일본 가. 방 계약했고 비행기표 샀어."


  편도 티켓과 부동산 계약서를 들고 무작정 방문을 열고 말했다.

  당연히 무슨 소리냐며 아빠는 펄쩍 뛰었고(사실 그렇게 높이 뛰진 않았다. 곧 차분하게 나를 설득하려고 하셨지만 이미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상태였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나를 설득하는 아빠에게 지금까지 안된다 해서 하지 않았던 것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난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까지 후회한다고, 편도 티켓을 들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간다는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도움은커녕 이력서에 빈칸만 생길지언정- 그래도 가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다음 날 내 짐을 우체국까지 같이 옮겨주었다.


일본으로 떠나던 날 이고 지고 갔던 내 짐들.






  그리고 나는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으며 울었다.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우리 집 강아지가 보고 싶을 것 같아서.

  구구절절 거창하게 썼지만, 결론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퇴사하고 도쿄행 편도 티켓을 끊어 떠나버린 이야기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나는 도쿄에서 내 인생 가장 행복한 1년을 보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울어버릴 정도로.


  서른이 되기 전에 어딘가로 다시 떠나볼까.

  세상은 아주 넓어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내가 모르는 아주 멋진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텐데.

작가의 이전글 무조건 실패 없이 사랑받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