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무 힘든데, 네 앞에선 말 못 하겠다. 너 진짜 박복하고 인복 없다. 힘들겠다. 어쩌니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그저 적당히 아는 사람이,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나눈 대화가 시작이었던 거 같은데, 어느샌가 그녀는 나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받는 듯했다. 사실 딱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젠 말하기 입 아픈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들, 두 아이의 육아, 엄마의 투병, 육아 도움 없는 시댁을 향한 악에 바친 내 마음,
변변치 않은 집안의 경제력, 회사에서 곱지 않은 시선들, 나를 이끌어주거나 기회를 주지 않았던 상사.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 잘해주었지만, 끝에서는 나를 돌아섰던 여러 사람들.
그렇다고 해서 무엇하나 끝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해야 하는 생활형 노동자이고, 아이들을 잘 양육해야 하며, 아픈 엄마에게, 그런 엄마를 간병하는 아빠에게 디딤돌이 되어주어야 한다.
순간,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쓰라리고 저릿했다. 찌릿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던가.. 아니면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던가.
나와 가까운 사이도 아닌 이가,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말할 정도로 내가 안쓰럽고 박복한 인간인 건가?
나는 그 어디에도 내 마음 뉘일 곳이 없는 사람인가.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지만, 늘 애쓰고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왔는데 타고난 팔자가 이다지도 복이 없는 사람인가?
짧은 정적 속에서 _ 나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억울하다가, 슬펐다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가 이내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희망 회로를 돌렸다.
아닌데_ 나는 집에 돌아가면 세상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대. 나를 보면 짤똥한 팔로 꽉 끌어안아주는 우리 집 둘째, 우리 집 아기천사가 기다리고 있는대. 이제는 제법 팔다리가 쭉 길어진, 그림같이 아름다운 우리 아들이 엄마 가장 이쁘다고 말해주는데.
나의 천사들, 나의 아가들.
가끔 짜증을 많이 내지만 나를 아껴주는 자상한 남편이 있는대. 나는 혼자가 아닌데. 가끔 긴 긴 통화로 오랜만의 안부를 풀어낼 내 평생의 친구들이 있고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적당한 직장을 다니고 있고, 요즘같이 추워진 날씨에 아침에 따듯한 라테를 마시며 혼자만의 소소한 여유를 즐길 수 도 있는대.
나는_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어렵고 힘든 순간이 다가와도
넘어졌다. 일어선. 넘어졌다. 일어선. 넘어졌다. 일어선. 넘어졌다. 일어선. 넘어졌다. 일어선. 마지막으로 넘어졌다가 일어선 또 한 번 속는 셈 치고 넘어졌다가 또다시 일어선 진짜 마지막으로 넘어졌다가 안간힘으로 일어선 넘어졌으나 그 자리를 툭툭 털고 지나온 그런 나인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행복과 행운의 순간이 아주 많지는 않았어도, 나는 나에게 주어졌던 그 고비들을 버티고 넘어온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를 적당히 아는 그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늘 행복하지는 않아도, 어느 날 찾아온 순간에 감사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
잠들려고 누운 깜깜한 방에서 나를 바라보던 크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가 내 얼굴을 만져주던 순간을 마음에 부적처럼 오롯이 새긴 사람이야.
잠자는 아이를 품 안에 안으면, 그 아이가 엄마 없는 시간에 간식으로 먹은 딸기 내음을 풍기던 그 귀엽고, 달콤한 시간에 세상 행복해지는 사람이야.
나는 어느 순간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기대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