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철학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준 Mar 05. 2024

복어

'피해의식'수업을 듣고

복어는 왜 독으로 가득 찬 물고기가 되었을까?

복어는 왜 가시로 온몸을 둘러쌓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까?


자신이 독으로 가득 찬 몸이라 모두가 나를 괴롭히고 싫어한다고 했다. 몸을 부풀릴 수밖에 없고, 가시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느 날, 돌고래가 찾아왔다. 복어는 매끈하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돌고래가 마냥 부러웠다.

복어는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받은 돌고래가 싫었다.자신을 잡아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라 믿었다.


돌고래는 눈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한껏 부풀린 복어를 보고 안아주었다. 때로는 그 부푼 몸이 참 귀엽다고 해주었다. 그렇게 돌고래는 복어에게 첫 친구가 되었다. 돌고래와 보내는 시간은 복어가 복어라는 것을 잊게 해 주었다.


몇 번을 같이 놀았을까? 그제야 돌고래의 뒷모습에서 그의 상처를 보았다.

자신의 가시 때문에 온몸이 할퀴어지고 갈라진 피부를 보고야 말았다. 돌고래는 복어의 독을 삼키고 먹어주었다. 돌고래는 그렇게 죽어갔다.


복어는 자신이 가시와 독으로 가득 찬 물고기가 된 이유를 알았다. 자신에게 다가온 불가사리, 조개, 작은 물고기가 떠올랐다. 당신 때문에 다치고 죽었던 기억들이 쫓아왔다.거울을 볼 때 부풀어진 몸속에 딸려오는 돌고래, 불가사리, 조개, 물고기의 표정뿐이었다.


복어는 아무도 없는 심해를 찾아간다. 심해로 내려가 자신의 가시를 바위에 대고 긁는다.

조금이라도 더 작아지기를, 갈려서 뭉뚝해지기를.

복어는 복어이기에 해를 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슬픔을 아는 것은 복어의 유일한 자랑이다.


복어는 다음 생애에 돌고래가 될 순 없다.

다음 생애에는 좀 더 가시가 덜 돋친 복어, 그다음 생에에는 독성이 작은 복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10번 정도 다시 태어나면 돌고래가 될 수 있을까? 돌고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돌고래를 기억하며 돌고래가 되고 싶은 기쁨과 슬픔으로 살아간다.

복어는 슬플 때 기쁘고, 기쁠 때 슬프다.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나는 너가 될 수 없고, 너는 나가 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