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철학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준 Mar 29. 2024

1 그리고, 100%

'피해의식' 수업을 듣고

"피해의식 수업이 10주가 끝났다. 너에게 남아있는 피해의식은 몇 퍼센트냐?"

10번의 수업이 끝나고 스승은 질문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만의 생각을 나누었다. 잠깐이지만 10주를 돌아보았다. 수업을 들으면서 한숨이 나왔던 입. 농담마저 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던 손. 피해의식으로 부모, 친구, 짧게 지나쳤던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파이게 한 상처가 떠올라 쥐어뜯은 머리. 수업이 끝나고 늘 힘이 빠져 터덜터덜 걷던 다리. 그 모든 순간이 다 기억으로 떠올랐다. 10주간의 수업은 10주가 아닌 31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 수업이었다.


"25% 정도 남은 것 같아요."

짧은 시간 안에 떠오른 숫자는 25%였다. 왜 하필 25라는 숫자였을까?

6년 전, 스승과 소중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25살이었다. 그 이후 6년 간 못해도 25개가 넘는 수업을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피해의식을 작은 불씨라고 한다면 피해의식의 양상은 모두 갖추어 커다란 불덩이 그 자체였다. '나 같은 게 뭘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겠어?' '나 따위가 뭘 해낼 수 있겠어?'라는 생각뿐이었다. 불덩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먹물이 번지듯이 마음의 틈이 열렸다. 어떻게 틈이 열릴 수 있었을까? 나보다 더 짙은 아픔을 지나온 친구들이 되려 나에게 따뜻한 손을 건네줄 때,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감당하면서도 너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스승의 삶을 볼 때 틈이 열렸다. 그 6년은 순간을 살아감과 동시에 25년을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25라는 숫자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나의 피해의식은 얼마나 옅어졌을까?


"1% 옅어졌습니다. 그리고 100%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수없이 상처 준 사람들이 떠올랐고 나로 인해 더 이상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수업을 듣는 내내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수업을 듣고 항상 집에 일찍 가는 편이었다. 늘 마음이 편치 않고, 더 정직하게는 바위 속에 숨고 싶었다. 10주 내내 영화 속 등장인물을 보고 직장 상사를 보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봐도 그들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돌기가 보였다. 남자친구,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서 느껴지는 그들의 뾰족한 돌기, 나의 돌기와 너무 비슷해서 더 날카로워지는 돌기를 보았다. 나는 피해의식 그 자체이기에 피해의식 말고는 가진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양상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작은 희망이었다. 나에게도 가진 피해의식이기에 너의 피해의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거름망이 되어 더 적게 상처받고, 더 조심히 다가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너의 피해의식을 보지 못했다면 온 주변을 아직도 불을 붙여 폐허로 만들었을 것이다.

피해의식을 안다는 것으로 피해의식이 제거되거나 옅어질 수 없다. 사실, 피해의식은 제거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옅어지는 것도 매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옅어진다는 것도 나와 비슷한 피해의식을 너머 너만의 피해의식을 껴안아주어야 한다.

나의 피해의식이 내 삶에 어떻게 흐르고 있고, 너에게 어떻게 닿았는지 알게 해 준 수업이었다. 그렇게 1% 옅어질 수 있었다. 이제 나의 피해의식은 네가 가진 피해의식을 볼 수 있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자랑이다. 가진 게 그것밖에 없다. 그것밖에 없어서 너의 피해의식을 껴안아주는 데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때 나의 세계 너의 세계 모두 뒤바뀌고 뒤집어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1% 옅어지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 너의 1%를 위해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다 줄 수 있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