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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준 Apr 20. 2024

마음이 움직인다

선이란 무엇인가 - 사색(思索)

내 마음을 저편에 의탁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이 초목이든 축생이든 내 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회와 자연이 내 마음속에서 움직입니다. 내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은 그 속에서 공명하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월요일 오후, 자연 앞에서 마음이 차올라 붉어지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러한 기쁨을 어쩌다 누리게 되었을까?' 눈과 마음에 소중한 것들을 담아내며 마냥 그 순간을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와, 내가 이런 것도 보고 나 괜찮은 인생이네!' 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혼자만의 힘만으로 이뤄낼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은 자연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었던 하루들 뿐이다. 의지한다는 것은 의존하지 않기 위해 의지하지 않으려고 해야 가능하다. 그렇게 해야 겨우 너의 자리를 범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 매번 애를 써야 티끌이라도 너에게 상처를 덜 남길 수 있었다. 매번 말 한 마디 앞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매번 돌아서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하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했고, 반복한다. 


사람이 없는 곳에 그와 단둘이 풀내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색으로 물들어진 그 공간을 걸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누군가에겐 당연한 게 아니라서 가볍게 이 순간을 누리기 힘들었다. 내가 잘나서, 비교적 삶을 잘 살아내서 지금 이 순간 이 곳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준 나무들은 마음의 무거움을 가져가주었다. 그러나 그 빈 자리는 다시 머물러야 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 마음을 건네고, 나누어주어야하는 의무로 들어찼다. 그 무거움이 마냥 버겁지도, 그렇다고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한없이 가벼워지지도 않았다. 시소처럼 양쪽 끝 추가 오르락내리락 하듯 번갈아 움직였다.


우리에게 사색은 필요합니다. 그것도 사물을 생각만 하는 것은 무익하며, 이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마련입니다. <선이란 무엇인가> 스즈키 다이세쓰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스승의 가르침 중에 '각자의 짐은 각자가 져야한다. 함부로 책임져주려고 하는 오만함은 범하지 말고, 남에게 의존하려는 나약함도 범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생각났다. 나는 그 누구의 슬픔도, 짐도 대신 지워줄 수 없고 지울 수 없다는 것을 배우고 말았다. 내가 운이 좋아서 받았던 이 순간을 고이 담아 예쁘게 적어 표현하는 것.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잘 건네주는 것. 너도 느낄 수 있게 나만의 방식으로 지치지 않고, 굴하지 않고 표현하는 것. 


지금 이 순간 너를 어여쁘게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너를 좋아하기에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도 있다. 내 마음이 탁해서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괴로움도 있다.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탁하면 그 사람이 탁하게 보이고, 내가 억지로 하면 그 사람의 우러나오는 선의마저 억지로 한다고 오해한다. 내 마음이 거짓이라면, 그 사람이 보여준 진심도 거짓이라고 보게 된다. 결국 나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내가 있는 자리를 표현하는 것이 내 무게를 스스로 지는 삶이다. 또한, 너에게 받은 것을 잊지 않고 그 기쁨에 수반되는 부채감까지 함께 이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예쁘게 꾸며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단 한 순간도 혼자 살아갈 수 없었다. 나는 너가 있어야 했다. 그 너는 결국 수많은 너였으며, 수많은 자연이었다. 너가 살아낸 몇 만 시간, 몇 억 시간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 자연들을 생각하면 우린 얼마나 많이 만났던 걸까? 이미 내가 엄마 뱃속에 있던 그 순간부터 우린 만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린 만나고 있었고, 그걸 모르고 있던 것 뿐이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꽃, 나무, 바람, 해, 너, 그리고 너가 만났던 꽃, 나무, 바람, 해, 수많은 또 다른 너는 이미 우린 또 그 전에 수없이 함께 했는데 나의 시야가 좁아서, 깊이가 낮아서 몰랐을 뿐이다. 모른다는 게 참 슬프고, 정직하게 말하면 그 많은 것들을 알게되면 헤아릴 수 밖에 없어서 얼마나 힘들까 싶어 너무 많이는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너가 곧 우주이고, 세계라는 걸 알면서도 내 눈앞에 보이는 그 단면적인 너조차 아직도 모르는 게 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너를 담아내고 싶다. 비틀어진 마음에 담아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너라는 사람 그대로 담아 보여주고 싶다. 자체를 나로 표현하고 싶다.


너를 향한 사색에 잠기며, 매번 또 다른 너가 되어 표현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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