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목부터 써 놓고 시작한다.
보통 제목을 정해도, 글을 쓰다 보면 제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쓰고 싶은 내용만 틀이 잡히면 쓴다. 제목은 맨 마지막이다. 하지만, 이 글은 제목에 맞추어진 글이고 싶었다.
이 제목이어야만 하는 글이 내 삶에 뛰어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을 간직한 채 걸어갔다.
기다림은 닫고 싶은, 떠나보내고 싶은, 잊고 싶은 마음을 눌러둔 채 담아내는 시간이었다.
불행한 사건, 기억 앞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나를 짓누르는가?' 하는 한탄만 했던 시간이 길었다.
이미 지나가고 없는 불행을 붙잡느라 많은 시간과 힘을 들였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놓쳤다.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놓쳤다. 기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나에게 닿으려고 했던 사람의 마음을 태워버렸고,
딱 하루만, 1시간만이라도, 한 순간이라도 지나간 불행을 털고 살아냈더라면 피할 수 있던 기회를 뿌러뜨렸다. 불행은 당연하다는 걸 끝없는 후회를 반복한 후에야 알았다.
불행은 그저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피할 수 없다.
누군가는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아도 칼로 몸과 마음이 베이는 일들을 겪고,
누군가는 잘못을 해도 남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작은 상처 하나 생기지 않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불행에도 너의 불행이라면 뛰어들어 굳이 몸에 상처라는 흔적을 남기고.
이 모든 게 그 사람에겐 당연한 것으로 남는다.
자신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보며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나의 지난 불행에만 메여있는 나라서 말 뒤에 숨은 그 사람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나의 불행에 아무렇지 않게 넘겨내는 것만 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찾아와 덜어내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붙잡고 있는 썩어버린 불행한 기억을 그 사람이 직접 와서 힘으로 떼어주려 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얕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너의 마음에 스스로를 가두고, 기억에 갇혀 내 마음을 오해할 때.
너의 불행을 두고 달, 나무, 땅, 햇빛을 봐도 너를 떠올린 시간과 무색하게 너를 보면 아무 말을 못 했던 순간에.
너의 불행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때. 도움을 주려고 오히려 너를 보지 못하고 나만 보게 될 때.
살짝 눈이 찌푸려질 정도의 밝은 연두색 들판 앞 왼쪽 가장자리에 세 사람이 서 있다.
이 그림을 보고 담아둔 단어 '당연한 불행'이 떠올랐다.
모두 벌거벗었다. 우리는 세상 앞에 불행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감싸주는 사람만 보고, 누군가는 자신의 옆사람을 품고 세상을 마주한다.
운이 좋아서 어깨를 감싸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림 속 아이처럼 나를 감싸주는 손길을 보지도 못했고, 세상과 마주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의 표정만 올려봤다.
그 사람도 벌거벗고 있다는 걸, 쉬워서 저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만 고개를 돌렸어도 보였을 텐데.
그 사람이 보였던 순간을 기억한다.
너의 손을 잡으려고 할 때. 그 사람이 나를 껴안아주는 온도와 편안함은 주지 못했다.
나는 너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나의 손은 아직 차갑고, 너의 손을 잡아줄 만큼 너와 가깝게 닿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불행, 내 불행에 허덕이는데 너의 손을 어떻게 잡고 너의 어깨를 어떻게 껴안아줄까.
나를 껴안아주었던 그 사람에게도, 너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너에게도
불행을 당연하게 대하는 만큼, 행복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