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뱅쇼
누구에게나 계절 루틴이 있을 텐데, 나에게는 공기가 차가워지면 돌아오는 루틴이 있다. 독감주사를 맞고, 뱅쇼를 끓이고, 과메기를 먹는 것. 뱅쇼는 와인을 좋아하던 순간부터 종종 마시다가 어느새 루틴이 되어버렸다. 싸구려 레드와인 두세 병과 오렌지, 레몬, 사과 같은 과일을 마트에서 구매하고, 시나몬 스틱, 정향을 함께 넣어 끓이기만 하면 끝난다. 나는 레시피가 따로 없고 그때그때 만나는 과일들을 넣는데, 귤이 들어갈 때도 있고 딸기가 들어갈 때도 있었다. 그렇게 끓여서 유리로 된 병에 넣어 차게 두었다가 데워 마시곤 한다. 자기 전에 마시면 몸이 뜨끈해지면서 잠이 잘 온다. 유럽에서는 감기약으로 먹는다는데, 한국에 쌍화탕이나 생강차가 있듯이 그들은 뱅쇼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독특한 향신료도 좋아하고, 시나몬이나 계피 향을 특히 더 좋아해서 감주보다 수정과를 선호한다. 어릴 때 계피 사탕을 골라서 먹던 아이이기도 했다. 뱅쇼를 끓일 때도 시나몬 스틱을 많이 넣는다. 보글보글 끓여지면서 온 집안에 시나몬 향이 가득해지는데, 나는 이 상태를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두세 차례 끓여서 마시는데, 추운 시간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준다. 끓여둔 뱅쇼가 가득 있을 때의 그 든든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 오직 뱅쇼만 데우기 위한 열탕기도 구비해 두었다. 그 정도로 나의 뱅쇼 사랑은 진심이고 또 대단한 것이다.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이가 내가 끓인 뱅쇼를 맛본 이후로 가끔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겨울에는 어김없이 뱅쇼가 생각난다고 했다. 이것 또한 아주 재밌는 일이다. 요 며칠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해졌다. 슬슬 뱅쇼를 끓일 때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