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영화
* 이 글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이야기가 다소 포함되어 있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서 ‘가장 형편없고 쓸모없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건, 다른 우주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멋진 나’로 살아가게 하는 거라고. 혹은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모든 다중 우주의 뛰어난 나’로 거듭나면서 동시에 딸을, 자신의 현재 인생을 구원 혹은 변화시킨 에블린, 지금은 행복한가요?
에블린은 얼마 전에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멀티버스의 ‘나’의 삶은 어떨지 체험해 보고 싶어졌다. 지금 내 삶이 한 편의 영화였다면, 에블린처럼 다른 우주의, 다른 나의 삶에 머무르고 싶어졌을까. 영화에서처럼 현재, 이 생의, 이 우주가 가장 형편없는 나일지도 모르잖아.
내가 영화를 유희로 제대로 즐기게 된 것은 20대가 되어서였다. 혼자 영화관에 자주 갔고, 영화를 보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다가 나오고는 했다. 아직 음악이 끝나지 않았고, 아직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당시 나의 소중한 취미 중 하나가 혼자 정한 ‘무비데이’였는데, 평일 연차를 써서 조조부터 심야까지 많으면 다섯 편 정도 영화를 보고는 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심심하고 조용한 영화는 보통 평일 낮에 몇 번 틀어주다가 바로 내려갔기 때문에 꼭 평일에 봐야 했다. 그래서 같은 관, 같은 자리에서 다른 영화를 연달아 본 적도 있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조조로 한 편 보고, 아점으로 대강 챙겨 먹고, 한 편 보고 나와서는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슬슬 영화를 한 편 또 보고 나오면 금세 저녁이다.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심야로 한 편 더 보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누가 보면 영화 평론가인 줄 알았겠네. 그렇게 맹목적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과 동선도 아주 기가 막히게 계획해서 하루 종일 영화에 빠져있었다. 막상 영화제는 한 번도 못 갔으면서 혼자 만의 영화제를 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때는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만 존재하는 누군가의 다른 삶을 나도 살아본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내가 겪는 어떤 사건에서는 어떤 배경 음악을 틀어야 할지 충실하게 상상해 봤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 어느 시점부터 영화는 영상으로만 즐겼는데, 어떤 감상과 여운이 깊게 남고, 이런저런 상상을 덧붙이게 되는 것은 실로 아주 오랜만이다. 내가 ‘생명 따위 존재하지 않는 사막 같은 어느 행성의 의미 없는 돌 중 하나였으면’ 하고 바란 적,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하기엔 어쩐지 이 삶은 너무나 많은 장르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느낌이 든다. 보통 영화는 한두 가지 장르에 집중하니까. 그래서 모든 장르를 엉망진창 다 때려 넣어 혼돈의 카오스 같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나니 오히려 이 영화 한 편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보였다. 모든 장면마다 희극과 비극이 있어서 웃다가 금세 울고, 인생무상 모든 것이 허무하다가도 이내 다시 희망이나 기대를 품기도 하면서, 그렇게 모든 장르를 끌어안고 삶의 한 가운데를 걷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