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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cingRan Oct 28. 2022

설거지는 제게 맡겨 주세요

032. 설거지



짝꿍과 반려하자고 얘기를 나눌 때 그와의 라이프 스타일 궁합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성격이나 성향, 하는 일, 음식 취향이나 일상의 루틴이 모두 다른데, 우리가 같이 살면 잘 맞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집안일이었다. 그는 요리를 더 좋아하고, 나는 설거지를 더 좋아한다는 것. 아 이거지! 더 재 볼 것 없다고 생각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나도 한때는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에는 식재료를 다듬고, 끼니 때마다 요리를 했고,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나물까지 볶아 먹었으니 말 다 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리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되었다.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자잘한 준비들이 부산스럽고 비효율적이다. 거기다 한식은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가 혼자 사니까 해둔 음식이 상해서 버리게 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시간들이 흘러 이제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도 설거지는 아직도 좋아한다. 오랜 자취 생활에서 가장 지겹지 않은 것이 설거지다. 그래서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짝꿍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 것이다. 물론 식사의 성향과 패턴은 나와 맞지 않지만,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다. 이래 봬도 반찬 투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아이였으니까.


설거지에 철학까지 가져다 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설거지는 요리만큼 어쩌면 요리보다 더 중요하다. 요리를 아무리 잘해봤자 깨끗한 식기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거기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봤자 결국 설거지가 끝나야 식사도 마무리가 된다. 청소도 마찬가지지만, 설거지를 하는 것은 삶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믿는다. 요리를 하지는 않아도 사람은 계속 먹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설거지는 필수로 하게 되니까.


그나저나 설거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끝내는 것이다. 그릇의 거품을 씻는다고 설거지를 다 한 게 아니다.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여기저기 튀어있는 물기까지 닦아주는 것. 그때 비로소 설거지가 끝난다.


라고 말하니, 짝꿍이 묻는다. 식기세척기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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