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핀뱃지
어떤 기념품을 사게 된다면 핀뱃지에 먼저 손이 간다. 많이 샀고, 또 많이 잃어버린 것이 핀뱃지인데도 계속 사고 있다. 올해 매달 애니멀런을 달린 이유이기도 하다. 동물 뱃지가 귀여워서. 메달보다 뱃지가 더 좋다. 뱃지만 주는 패키지가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대부분의 취향이 어릴 때부터 이어온 것이 많은데, 이 역시 10대였을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독서 감상문의 양에 따라 동장, 은장, 금장을 주었다. 말 그대로 색깔이 다른 동그란 핀뱃지인데, 금장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읽고 썼다. 진짜 금도 아닌데 왜 그리 갖고 싶었는지 몰라. 아마도 훈장처럼 여겼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던 시간과 그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중학교 때부터는 교복 왼쪽 가슴에 꽂던 학교 로고 뱃지와 플라스틱 이름표를 좋아했다. 교목과 교화가 ‘매화’였는데, 그래서 뱃지도 매화 모양이었다. 지금 봐도 귀엽고 예쁘다. 그에 비해 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뱃지는 한자로 ‘고’만 쓰여있고 예쁘지는 않았다.
10대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당시 청년부였던 이들의 옷과 가방에 꽂혀있던 뱃지가 탐이 났다. 청년들이 주 멤버였던 찬양팀의 뱃지였는데,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은색과 금색의 뱃지를 하고 다녔다. 은색과 금색의 차이는 아직도 모른다. 누군가가 많이 남는다며 쿨하게 두 개 모두 챙겨 주었다. ‘우물 안 올챙이’였을 때는 나도 커서 청년이 되면 당연히 찬양팀 소속이 되어 뱃지를 하게 될 줄 알았지. 개구리가 되자마자 그 우물에서 나오게 되고, 그저 추억으로만 남아버렸다.
20대 초반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점장이 입는 유니폼과 모자에는 귀여운 뱃지들이 잔뜩이었다. 아이스크림 푸는 기구들이나 여러 아이스크림 모양의 뱃지들. 그중 하나는 나도 받았다. 직영점 소속이라 의무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수료하면 뱃지를 하나씩 나눠줬다. 나도 일할 때 유니폼에 달아봤지만, 역시 한 개 달려있는 것보다 열 개쯤 달려있어야 더 멋이 난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직급 높은 사람일수록 뱃지를 많이 달고 있는 걸 보면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몇 년 전에 모든 뱃지를 꺼내 한곳에 모아 꽂았다. 지금도 벽에 걸려있는 뱃지 수집 포스터에는 다양한 종류의 뱃지들이 꽂혀있다. 꾸준히 사거나 받아왔으니 당연하겠지만, 후원을 하고 받은 뱃지, 어디선가 받은 브랜드 뱃지, 여행이나 전시에서 기념으로 사 온 뱃지, 어느 작품의 굿즈 등 다양하고 귀여운 뱃지가 잔뜩이다. 커피에 빠져 있을 때는 커피 관련 뱃지를 모았고, 특정 캐릭터나 고양이와 고래 뱃지도 많다. 거기다 그때그때 모아서 그런지 일관성도 없다. 왜 공군 뱃지까지 여태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릴 때는 인정을 받거나 소속감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아직도 이런 핀뱃지에 흥미를 갖는 것은 아무래도 스티커를 향한 것과 유사한 결이 아닌가 싶다. (나중에 또 스티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사실 가장 쓸데없는데 보면 또 귀엽고 다시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쓸데없고 귀여운 것들을 계속 만들고, 또 나 같은 사람들은 계속 사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