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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Jul 26. 2022

트렌스젠더분들 앞에서 드러난 나의 소심함

언제나 문틈에 낀 여자, 슬기로운 뉴욕의사의 응급실 아하!모먼트

     한 주 내내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뉴욕시의 푹푹 찌는 어느 오후에 만난 그분의 성별은 남성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환자 명단에 M(male. 남성의 약자)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케이스를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레지던트 왈,


 " 교수님, 그분 여자예요..."

 


    주어가 종종 뭉그러뜨려지거나 생략되곤 하는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그런 부분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He. She. 그리고 주어가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동사가 달라지는 언어. 그렇게 우리가 만난 그분은 알고 보니 생물학적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였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MTF(Male to Female)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이 성별 칸이 좁아서 M 만 보였던 것이다(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한 사람은 FTM(Female to Male)이라고 표기한다). 커서를 M 위로 갖다 대어 보니 MTF라고 박스가 조그맣게 뜬다.


     그렇게 인생을 뒤바꾸는 수술을 받은 그분의 나이는 23세였다. 성전환 수술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 번 하고 나면 복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막 쉽게 하는 수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정하는 데 힘들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은 행복하나? 이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완화의학 의사일 때와 달리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할 때에는 진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잘 물어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응급의학과 의사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건 환자분도 좀 당황하지 않을까...? :)    





 

나는 꽤 오래전부터 귀 연골 피어싱을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지 한 10년은 넘은 것 같다. 왼쪽 귀 상단에 2개. 원하는 위치와 디자인까지 이미 자료 수집을 마치고 다 정해 두었다. 실버보다는 골드, 주얼리는 미니멀리스틱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어울리게 심플한 링으로.  

대략 이런 느낌의... 저기 링 1개 있는 자리에 2개 하고 밑의 링들은 없는 걸로...?. 사진은 모델 오지영 님 인스타그램


그런데 매번 하려고 집을 나설 때마다 내 안의 소심함이 무럭무럭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아, 하고 나서 후회하면 어쩌지... 
 하고 나서 잘못돼서 감염되면 어쩌나...

잘못돼서 만두귀 되면 어쩌지...

영어로는 cauliflower ear라고 한다.


    그래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되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눈앞에서 자신이 타고 난 성(性)을 바꾸는 엄청난 결정을 하신 분들(그날따라 두 명이 나란히 오셨다)을 보니 문득 그렇게 귀 하나, 아니 두 개 뚫는 것 가지고 10년을 망설여 온 나 자신이 너무 소심하게 느껴졌다. 

아니 이까짓게 뭐라고! 그냥 하면 되지!! 


 그래서 귀찌를 샀다. 껴 보니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왜 진작 안 샀나 싶다. 이렇게 귀찌를 끼고 살다 보면 한 단계 더 나아가 피어싱을 하고 싶은지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은 지 마음의 가닥이 잡힐 것 같다.


 



현대 사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추구하는 인간상을 선호한다. 누군들 인생 한 번 사는데 내가 원하는 것 하면서 살고 싶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삶도 쉽지 않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사실 더 어렵다. 특히나 요즘처럼 시끌벅적한 세상에서는. 



그럴 때는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가만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좀 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거나,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반 발짝 즈음 더 내디딘 곳에서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 


바로 나의 귀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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