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의 뉴욕 응급실의 단편은 이러하다고 합니다.
금요일 저녁은 응급실이 가장 바쁜 시간 중의 하나다. 새로 장만한 스크럽과 사과색 운동화를 신고 상큼하고 신나는 마음으로 들어섰건만 미친 X 널뛰듯 춤을 추고 있는 대기환자 명단과 터지기 직전의 씩씩대는 압력밥솥 같은 응급실의 공기는 팍팍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고 이제 석 달 짼데 아직도 이러면 어떡하니 하는 우리 인턴과,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2년 차 레지던트, 그리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자꾸 오더 빠트리고 반만 하는 간호사와 함께 하는 프라이데이 나잇의 엔트로피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뉴욕의 응급실은
튀어!
라고 외치며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 할 곳이지만.........
나는 어떤 연유로든 이곳을 찾으신 분들의 고충을 해소하고 도와드려 할 의무를 가진 응급의학과 어텐딩이 아닌가. 친절과 책임감의 옷을 입고 나만의 정신승리 기법으로 무장한 채 열심히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가만히 환자를 보고 내 옆에 앉은 우리 레지던트가 EMS 리포트(현장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분들의 기록)를 보더니
" Oh my GOD..."
을 연발하며 말문을 잃는 것이 아닌가. 뉴욕 응급실 10년이면 해탈의 고지가 보인다고, 나는 웬만한 것에는 좀처럼 놀라지 않기 때문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어지는 환자 프레젠테이션을 듣고는 나 역시 눈이 동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30대 중반의 환자분이 배가 아프다고 오셨는데 스트레처 위에서 잘 자고 있다 자기가 문진을 시작하자 이것저것 좀 대답하다 계속 질문하니 "다람쥐 다섯 마리를 잡아먹었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자더란다. 그래서 구급대원 기록지를 찾아봤더니 거기 똑같이 '다람쥐 다섯 마리'라고 쓰여 있었단다.
헉, 이건 뭐지.
그냥 지어낸 거면 숫자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변함없이 다섯 마리로 일치한다.
아니 왜? 생 거로?? 얼굴이나 옷에 피 묻어 있어?로 시작해서 의사의 본분에 충실한 야생 다람쥐 먹으면 걸리는 병이 뭐가 있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일단 환자를 직접 본 후 결정하기로 하고 문제의 환자분께로 갔다.
검은 맨투맨티를 입고 세상모르게 새록새록 주무시고 계시던 그분은 별로 아픈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람쥐 피나 털이 묻어있지는 않았는데,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답도 별로 안 하셨다. 홈리스로 보기에는 행색이 너무 깔끔하고, 약물 하신 분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우리 다람쥐 선생님은 그렇게 평안하게 어린아이처럼 주무시고 계셨다.
2022년 여름 기준 뉴욕의 홈리스 인구는 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중남미 정치 불안으로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는 난민 유입으로 이 수는 더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현재 노숙자 쉼터가 포화 상태라 뉴욕시에서는 다가오는 겨울을 어떻게 맞이할까를 두고 고심 중이다. 내 한 몸 쉴 그늘을 만들어 줄 지붕 하나 없는 처지는 어떨까. 잘은 몰라도 내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과 범죄가 난무할 것이라 예상된다.
https://www.nytimes.com/2022/09/19/nyregion/eric-adams-migrants-cruise-ships.html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환자분은 정말 다람쥐를 먹었을까. 센트럴 파크에 널리고 널린, 때로는 주택가에서도 볼 수 있는 그 큼직한 다람쥐를 먹었다고 해서 딱히 크게 탈이 날 것은 없겠지만, 그 이유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착란이나 혹은 진짜로 굶주려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작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