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병원의 6월은 졸업 시즌이다. 졸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Senioritis(고년차를 뜻하는 시니어에 염증을 뜻하는 어미를 붙여 만든 단어로 군대 말년 병장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에 몸살이 난 아이들이 하나 둘 인생의 다음 챕터를 향해 떠나가고 7월이 되면 볼 빨간 뉴페이스들이 몰려와서 또다시 병원은 야단법석 홍역을 치른다.
어제는 곧 졸업을 앞둔 레지던트와 일하게 되었다. 버지니아로 Wilderness Medicine (번역기를 돌려보니 황야 의학이라고 나오지만... 여러 모로 자원이 부족한 야외(사막, 산속, 밀림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의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야) 펠로쉽을 하러 가는 T는 그 이름도 유명한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 자란 아이로 의대 가기 전 벌목꾼으로 일해본 이력도 있는 조금은 특이한 아이다. 우리는 쿵짝이 은근 잘 맞아서 같이 일하다 보면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곧잘 잡담을 나누는데 어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T가 응급 의학은 머릿속에 수많은 잡다한 생각이 부유하고 있다가도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순식간에 화악~ 하고 집중하게 한다며 그런 점이 좋다고 말했다. 순간,
아, 나도 그랬는데...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데드라인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을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하며 세월아 네월아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응급의학은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결정을 내리고 일을 계속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에 집중해서 빨리빨리 진행한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목표로.
응급의학과 의사로 10년이 넘게 살아온 나는 호스피스 완화의학 수련을 받으면서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분야는 다른 듯 비슷하지만 각자 고유의 매력이 있다. 상남자와 꽃미남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나는 현재 이직을 위해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분야가 2개인 만큼 옵션이 정말 많은데 그중 완화의학만 100% 하는 옵션도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가 된 지 처음 몇 년은 모르는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날들이 지속되면서 서서히 애정이 식어갔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배움을 더해보기로 하고 완화의학 펠로쉽을 지원했다. 매치 결과를 확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세기에 없었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같은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면서 정말 응급의학에 대해 온정만정이 남김없이 다 떨어졌는데... 비단 그랬던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전 미국의 의사들이 조기 은퇴 및 파트타임 전환으로 살짝 의사 대란이 일어났었다. 그렇게 팬데믹의 첫 고비를 넘긴 후 예정된 완화의학 수련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우리는 다시 볼 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ewyorkcorona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있다. 팬데믹을 함께 했던 레지던트들은 지금 다 졸업하고 떠나갔지만 그 자리를 팬데믹의 그 첫 시간을 모르는 새로운 레지던트들이 와서 채웠다. 예전부터 쭉 일해오던 간호사와 테크니션도 있지만 팬데믹 동안 미국 의료계의 지각 변동을 거치면서 새로운 얼굴들도 많이 보인다.
그런데 예전처럼 지글지글하지 않다. 도저히 이대로는 같이 못 살 것 같아 이혼하려고 별거 신청하고 새로운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나다 보니 문득문득 옛 남편의 장점들이 생각나는 중이라면 이해가 될까. 또한 얼굴을 마주하고 매일 지지고 볶고 살다 거리를 두고 꼭 필요할 때, 보고 싶을 때만 보니 예전만큼 부대끼지 않는다.
T 와의 대화에서 소환된 응급의학의 순간성은 분명히 내가 사랑했던 응급의학의 모습 중 하나이다. 난장판처럼 널브러진 정보의 조각들을 헤집고 다니며 필요한 조각만 집어와서 얼기설기 퍼즐을 맞추어 가는 것이 좌절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역시 다된 밥상 차려주는 다른 과에 비해 분명 내가 좋아했던 모습이었다. 당직을 서는 다른 과와 달리 병원 나가면 뒤도 안 돌아봐도 되는 점 역시 매력 포인트였다. 덕택에 나는 월드 클래스 여행자가 되었고. 평일 점심 약속에 문화생활도 가능하여 내가 사랑하는 도시 뉴욕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응급의학을 전공하기로 했던 16년 전의 결정은 실행 과정에서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고 힘들었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나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한번 내 인생의 다음 챕터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훗날 돌아봤을 때
"응,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했을 것 같아".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