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바로 당신 이야기입니다.
깡마른 몸에 형형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S 씨는 60대 초반의 중년 여성이었다. 짧은 쇼트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분으로 밀라논나 할머니의 조금 젊은 버전이라고 하면 쉽게 상상이 될까? 깐깐한 인상이 마치 잔뜩 털을 세우고 웅크린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연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아파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조심 다가간다. 괜찮아,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몸이 편찮으신 분들이 평소보다 좀 더 예민해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나 역시 평소보다 좀 더 부드럽고 나이스 하게 다가간다. 스타일리시한 인상답게 역시나, S 씨는 패션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다. 췌장암에 걸린 지는 2년이 조금 넘었는데 요 며칠 웬일인지 통증이 잘 조절되지 않아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집에 두고 온 아들 걱정,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병세에 대한 불안, ' 내가 없으면 $$$는 누가 하나' 사업에 대한 염려 등등으로 S 씨의 마음은 참 복잡했다.
첫 며칠간은 원래 드시던 통증약을 용량을 늘리며 조절해 봤지만 잘 듣지 않고 되려 졸림, 구토,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더 크게 생겨 결국 통증의학과에 신경 차단술(암세포 주변의 신경을 차단하여 통증을 줄이는 시술)을 의뢰하게 되었다. 보통은 의뢰한 날 바로 어떤 시술을 할지 결정하고 곧이어 시술 일정이 나오는데 오후가 되도록 아무 말이 없길래 알아봤더니 S 씨가 일단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하셨단다. 원래도 예민한 S 씨, 이걸로 마음이 더 시끄러울 것 같아 병실을 한 번 가 보았다. 역시나 S 씨는 담요를 둘둘 두르고 특유의 살짝 찡그린 인상에 불안한 눈빛으로 누워계셨다.
아픈 건 좀 어때요 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딱 부러지는 분 답게 시술 자체에 대한 이해는 잘하고 계셨다. 듣자 하니, 이 시술을 한다고 내 통증이 100% 다 나아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원래 모든 시술은 다 그렇다. 시술자가 100% 효과를 보장하는 시술은 아마도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지금 몸이 많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덥석 했다가 괜히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두렵고, 지금 이거 했다가 나중에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봐 두렵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S 씨의 생각의 저변에는 자신의 병세가 나빠지고 있다는, 죽음으로 한 발짝 두 발짝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그 두려움도 너무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내 환자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금 만이라도 마음이 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로의 안타까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그녀가 말했다.
나, 사실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봐 너무 겁이 나요...
그리고 그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완벽주의자들의 고뇌가 마음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로 몸져누워 있는 순간조차 그것을 놓을 수 없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우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지금까지도 너무 잘해 왔다고, 당장 결정 내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금 하는 대로 해 보다가 안 되면 다음에 받아도 되는 거니까 오늘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그냥 쉬라고,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고 달래준 후 병실을 나왔다.
그녀는 결국 시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퇴원을 하였다. 퇴원하던 날, 웃으면서 자기가 쉬운 사람은 아닌데 진심으로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도 웃으면서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 깡마른 몸 안의 더 메마른 마음에 한 줄기 안식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매 순간 좀 더 좋은 결정, 좀 더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쉴 새 없이 정보를 습득하고 장단점을 재어보며 정량화되지 않는 것들을 정량화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끊임없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예측해보려는 나의 이런 시도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사실 그때 그녀에게 시술을 받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시술하는 의사가 설명은 그렇게 해도 대부분 별 합병증 안 생기고 증상은 좋아진다고.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세계 정상급의 의사들에게 그 한 몸 맡겨놓고 지금 이 순간 당신만큼은 제발 좀 맘 편하게 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스스로는 놓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그 무거운 짐을 내가 잠깐 대신 들어주고 싶었던 이런 속마음을 그녀는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