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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Jun 22. 2022

나는 어디에서 죽고 싶은가

어느 수요일 오후에 만난 92세 할머니의 이야기

    오랜만에 응급실로 돌아와서 다시 응급의학과 의사의 감투를 쓰고 일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나와 함께 뉴욕의 그 무시무시했던 First wave를 함께 버텼던 레지던트들은 무럭무럭 자라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https://brunch.co.kr/brunchbook/newyorkcorona ), 둥지를 박차고 나갈 준비가 된 그 아이들이 떠나기 전에 또다시 완화의학이 응급의학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는 환자분을 만나게 되었다.




  

     92세의 할머니. 여러 가지 기저질환이 있으신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입원하셨던 올해 , 완화의학 컨설트를 받고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하셨다. 할머니는 치매로 상황 판단이 이미 흐려지셔서, 할머니의 의료 결정 대리인인 따님과 아드님이 결정을 내리셨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정말 큰일이 있지 않는  병원에   오시는데, 오늘 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할머니는 혼자 덩그러니 여기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신다. 치매인 할머니께서 나에게 조곤조곤 오늘  오셨는지 말해주실 리는 없고. 두리번 두리번하고 있던 내게 때마침 아드님이 전화를 하셨다.


" 한 3일 전부터 어머니가 좀 이상하신데... 다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하시고 사람들이 요로 감염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앰뷸런스를 불렀어요"


 고령층에서 대부분 이런 경우는 아드님이 말씀하신 대로 요로 감염이나 탈수 증상이다. 집에서 치료하기에는 조금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입원시켜 치료해야 할 것 같긴 한데,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code status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살짝 여쭈어봤더니

  

" 아, 누나랑 같이 얘기를 해 봤는데 아무래도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 주세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요로 감염을 진단하기 위해서 할머니의 소변 샘플이 필요한데 할머니는 기저귀를 차고 계셨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할머니, 소변 샘플 좀 받아오세요" 하면 받아오실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또렷하지 않으셔서 도뇨관을 꽂아서 소변을 뽑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리 팀 간호사에게 부탁한 후 다른 환자를 보고 있는데 잠시 후 나에게 와서 진정제를 좀 써야겠다고, 할머니가 너무 몸부림치며 저항하셔서 도뇨관을 꽂을 수가 없다고 한다. 소변 샘플 하나 뽑자고 진정제까지 쓰는 건 또 좀 아닌 것 같아서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미 3명의 간호사와 조무사가 할머니 팔다리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나까지 하나 더 보태면 진정제 안 쓰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장갑 끼고 들어가서 할머니 팔을 붙잡고 말했다.


 "할머니, 많이 힘드시죠? 조금만 참고 협조해 주시면 금방 끝나요. 할머니 아프신 게 요로 감염 때문일 수도 있어서 소변 샘플이 필요하거든요. 편안하게 계시면 금방 끝나는데 자꾸 이렇게 싸우시면 아프고 힘들어요. 자, 릴랙스~ "

 

 치매인 할머니가 알아들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할머니 눈을 보면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리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참 중요한 문제인데, 평소 건강할 때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는 문제이다. 75% 가 넘는 한국인이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00316#home), 그중 많은 수가 응급실을 통하여 들어온다. 응급의학과 호스피스 완화의학을 복수 전공한 나는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주제의 의사 결정에 관심이 많다. 한국 미국을 불문하고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많은 환자분들 중에서 그중 몇 명이나 내가 다시는 내 집 문을 밟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실까?  

 

     치매로 깜빡이는 할머니의 뇌도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라 드문드문 불이 들어오면서 주변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내 말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시던 할머니는, 내가 처치가 끝나고 천천히 " 할머니, 아드님이랑 얘기했는데 아무래도 입원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그랬더니  " 아, 그럼 뭐 그래야지..."라고 조용히 대답하셨다.

   

     그때 할머니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할머니가 진정 원하셨던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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