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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뉴욕의사 Jul 12. 2022

마음의 구멍은 무엇으로 채울까

42년을 함께한 배우자를 잃고 울던 할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패기 넘치는 파릇파릇한 갓 2년 차 레지던트(미국 의료계는 7월에 새 학년이 시작한다)가 궁시렁궁시렁 대면서 온다. 웬 할아버지가 자기 뇌전증 약을 달라고 응급실에 왔는데 42년 간 같이 살던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댁에서 혼자 계시기가 힘들다고 하셨단다. 사회복지사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니 그건 또 아니란다. 그러면서 도대체 자기더러 어쩌라는 거냐고 투덜댄다. 차트를 가만히 살펴보니 어제도 똑같은 이유로 응급실에 오셨다. 처방전도 나갔는데 왜 다시 오신 걸까. 이럴 때는 대부분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 문제가 있다.

 


 "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차트를 보니까 어제도 똑같은 이유로 오셨던데, 혹시 저희가 놓친 무언가가 있나 싶어서 한 번 여쭈어봐요".

 

" 아... 내가 뇌전증이 있는데... 약을 먹는데... 어지럽고... 힘들고... 발작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중략... 내가 요즘 집에 혼자 있는데... 그런데 얼마 전에 내 와이프가 죽었어.  "

 

 말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발작을 일으키실 것 같다.


" 아이고..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

 

할머니는 유방암으로 6년 정도 투병하다가 올 4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말을 떼자마자 할아버지는 차오르는 눈물을 옷자락으로 훔쳐내면서 아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며 힘들어하셨다.  


 할아버지, 너무 그러지 마세요, 지금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계신 거예요. 할아버지의 이런 상태가 너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지극히 정상이에요. 심지어 같이 하신 시간이 42년이나 되는데,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보통 그럴 때는 다른 사람과 그 슬픔을 나누면 더 도움이 되긴 하는데, 원하시지 않으시면 구태여 지금 당장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어요. 괜찮아요.





    응급 환자의 정의는 무엇일까.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나 역시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기 전까지는 응급의학은 저 문자적 정의 그대로 곧 죽을 만큼 아픈 사람만 보는 과인 줄 알았다. 미국 드라마 E.R.처럼 심정지가 온 환자들을 살려내고 총칼 맞아 피 철철 흘리며 오는 외상 환자분들을 스트레처에 싣고 막 뛰어가고 하는 왜 그런 긴박감 넘치는 현장 말이다. 그런데 수련을 받으면서 보니 아니 웬걸. 물론 그런 드라마틱한 부분도 있다. 아니, 많다. 하지만 우리 응급의학과 의사들끼리는 종종 응급실을 사회 제도의 맹점으로 야기된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내가 일하는 뉴욕시와 같은 대도시일수록 더더욱 심하다. 물론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의료 시스템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미국은 한국에 비하여 일차의료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고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위의 정의와 같은 응급이 아닌 문제로 응급실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또한 EMTALA(응급의료법, 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Labor Act의 약자로 엠탈라 라고 읽는다)가 있어 환자의 응급 진료권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중증도 분류의 큰 흐름은 환자에 의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응급실을 찾는 뉴욕 시민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자문하는 순간이 온다. 세상의 모든 병을 다 고치려는 듯 패기 넘치던 우리 레지던트도 그랬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드시 뇌전증 약을 받으러 응급실로 오신 우리 할아버지는 사전적 의미의 응급 환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엉엉 울면서 사실  집에  있다고 앞으로 집에서 그냥  먹겠다고 씀하시  할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빛나는 최신 의학 지식도 아니고 뛰어난 술기도 아닌, 그냥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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