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에 영화 관련 수업을 하나 들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연출 기법이나 여러 사조에 대해 가르치는 정혜진 교수님의 '논픽션 내러티브(Nonfiction Narrative)'라는 강의였다. 교수님이 내주시는 과제며 발표 등을 준비하다가 영화에 대한 기본 지식이 너무 부족함을 깨달았다. 시종일관 아이디어는 미켈란젤로며 피카소인데, 손은 여전히 붓질 한 번을 못하고 펜으로 밑그림만 끄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방학을 맞아 영화 기본 이론을 좀 살펴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집에 내려와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 이 책이다. 더군다나 장차 중국 영화도 공부하고자 하는 중문학도이니, 설령 이론서에 적힌 모든 이론을 외우진 못하더라도 대강 그 틀은 잡아놔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당나라 문장가 한유의 글 중에 <원훼(原毁)>라는 글이 있다. 그 글 중간쯤을 읽다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지나치게 남에게 까다로우면 선하다고 인정받기 어려우며, 반대로 지나치게 자신에게 관대하면 스스로 얻는 것이 적다(詳故人難於爲善, 廉故自取也少). 이 책을 읽으며 이 구절이 수시로 생각났다. 저자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까다로움(詳)'과 '관대함(廉)'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문서이므로, 저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를 내세우지 않고 어떤 이론이 어떤 영화에 적용됐는 지를 상술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 예시로 든 모든 영화가 모두 히트를 친 것도, 적자를 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흥행과 비흥행으로 나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넘어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며 깊이 생각해볼 만한 요소들 혹은 영화적 장치의 발전 가능성들을 매 영화마다 타진한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이 입문서가 한 시대에 갇힌 '영화 현상'에만 기대어 현재의 잣대로만 비판되는 것이 아닌, 입문서를 읽는 독자들이 훗날 책 속 화두들을 발판으로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영화 연구 수확을 거둘 것을 확신하는 저자의 바람을 암시한다. 이로써 저자는 까다로움으로부터 탈피한다.
그렇다면 관대함으로부터의 탈피는? 바로 방대한 영화 작품 인용이다. 저자는 작가이기 전에 연구자로서, 여러 시대에 걸친 영화 작품을 감상하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한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많게는 서너 편의 영화를 예시로 들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영화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며 해당 개념이 어떻게 변용됐는 지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여기서 독자는 입문서로서의 요건 이전에 저자로서의 요건을 신뢰하게 된다.
머리말을 보니 94년에 출간된 같은 저자의 책을 증보한 판본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최근 2014년에 재차 증보한 판본이 있었다. 입문서가 이처럼 계속 시간차를 두고 증보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독자와 관객도 사고방식이 변하기에, 기본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연구 생애 동안, 혹은 그 이후에도 더 많은 입문서가 출판되기를 마지막으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