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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Sep 18. 2020

[독서노트] 바이러스의 위협

(소니아 샤 지음, 정해영 옮김, 나눔의 집)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을 감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견고하게 남아있을 줄 알았던 사랑이 내게서 떠나려는 기미, 호황기에 사들였던 주식이 주가조작으로 휴지조각이 돼버리는 상황, 나도 모르는 원수를 진 누군가가 내게 품은 복수,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위에 예민해진다면, 어쩌면 이런 위험들은 적어도 사전에 느껴질 수는 있을 것이다(물론 대상을 향해왔던 믿음은 이를 부정하겠지만).


아무 경고도 없이 나를 엄습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원체가 있다면 어떤가? 또 그것이 아프리카 오지나 극한의 생존법이 필요한 지역이 아닌, 이미 문명화된 지 오래며 고도로 발전된 국가에서 창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역풍을 맞은 지 반년이 넘었다. 내 주변 사람들만 당장 봐도 가히 병원체에 대한 공포가 만져질 듯하다. 이 시기가 곧 끝나고 바이러스가 백신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는 부류, 감염될 때 감염되더라도 하고픈 일은 해야겠다는 부류, 출근이나 등교를 제외하고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문불출하는 부류, 여러 유형이 내 주변에 보이고 있다. 코로나에 의해 희생되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보낸다.


저자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의 존재를 2016년(원서 기준) 출간된 <판데믹,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언급하고 있다. 읽다가 상당히 놀랐다. 나 또한 요즘같이 항상 경각심을 느끼는 시기에 코로나라는 이름을, 마치 유물을 발굴해 낸 마음으로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선진사회에서 감염병이 사라졌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며, 감염병 병원체는 어디에나 돌아다녀 왔다.
(p. 18, Burnet "Natural History of Infectious Diseases)


다만 선진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착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실제로 불과 5년 전만 해도 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가 유행했었고, 17년 전에는 관박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종이 몇 개월 만에 8000명의 인구를 SARS(급성 호흡기 증후군)에 감염시키고 그중 77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들 SARS와 MERS를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속한 상위 속이 코로나바이러스였다. 중국에서는 자국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지만, 코로나 유행 이전에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일찍이 지금 사태가 야생동물시장과 밀집된 야생동물들 사이 종간 전파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점점 가까워져 가는 지구촌 사회에서 결국 지구라는 한 '촌락'이 몰살당했다.


책 표지에 실린 저자 소개란에는 저자 소니아 샤가 과학전문 기자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과학전문기자라고만 형용하기엔 많은 부족함이 있다. 전염병 취재 경험부터 전염병 발생 역사, 전염병의 정치사회적 파장을 추적하며 써내려 간 글은 정확한 정보와 치열한 탐구로 촘촘히 직조된 카펫과 같다. 옮긴이 후기를 보면 저자는 실제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언론인 역할을 감당해 온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소외된 여성들을 폭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또 거대 제약회사의 이윤 창출에 착취당하는 제3세계 시민들의 실상을 알리는 트러스트 버스터(Trust-Buster)로서의 성과를 이미 <악녀들>, <인체사냥>등 몇 권의 책으로 증명해 냈다.


1832년 콜레라 유행 당시의 뉴욕을 그린 삽화, 출처: New York Times


1장부터 10장에 걸친 모든 글은 크게 병원체의 발견, 전파, 감염, 사회문제, 치료, 인간이 가진 고유한 방어기제, 그리고 다시 병원체의 (새로운) 발견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그녀는 병원체에만 집중하지 않고 잘못된 사회 통념과 정치인 및 기업의 이기심에도 시선을 던진다.  흔히 전염병 발생 시 사람들은 특정 감염원(源)이 있고 바이러스가 번식하기 좋은 열악한 위생상태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더 많은 사실이 보인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처럼 1832년 뉴욕이 콜레라로 뒤덮였을 때는 애초 계획됐던 상수도 시설 공사가 무산된 상태였다. 공사를 위한 예산은 그리고 정부와 결탁해 설립된 기업으로 들어갔으며, 기업은 생활용수로 정화되지 않은 더러운 물만 공급했다. 히포크라테스의 학설을 2000여 년 동안 맹신하며 콜레라가 '악취'에서 오는 줄로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인식되었음은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아울러 인간 본연에도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방어기제가 있음을 끝 부분에 소개하는 까닭은 병원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병원체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천성적인 오만함을 고발하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전염병 자체를 먼저 다루지 않고 전염병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나 인간이 가진 면역체계를 먼저 다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책은 창조 이래 생물체들과 장구한 시간을 함께해 온 미생물의 힘을 사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으로 평가 절하하게 된다. 또한 10장에 밝힌 바와 같이 미지의 바이러스 또한 종래에 대처해 온 방법으로 다룰 수 있다는 착각을 은연중에 사람들에 심어주게 된다.


물론 미생물 세계에서 우리의 역할을 재상정하는 것, 다시 말해 자연에서 우리의 위치를 재상정하는 것은 대유행병이라는 골칫거리에 대한 신속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에 걸친 프로젝트에 가깝다.(p.361)


과학 지식을 다루는 대중서적은 항상 균형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균형추가 과하게 전문가를 향해 있어도, 마찬가지로 너무 일반 독자를 향해 있어도 안된다. 너무 현학적이지도, 상식에만 머물지도 않게, 이 책은 그 가운데서 균형추를 잘 유지한 완성도 높은 책이다.


광저우 신위안 야생동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사향고양이,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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