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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환 Sep 25. 2020

[독서노트] 돈 키호테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민동선 옮김, 청목)

<돈 키호테>는 아동용이 아니다!


아동도서관 책장에 꽂힌 <돈 키호테>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상권과 하권을 합쳐 800페이지가 넘는 책이 어느샌가 '풍차와 대결한 가짜 기사'이야기로 압축됐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돈 키호테=허풍쟁이' 또는 '돈 키호테+멍청이'라는 공식만 사람들 뇌리에 각인됐다. 그러니 돈 키호테를 읽어봤느냐는 질문에는 다들 이렇게 대답한다.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뭔 지는 알죠. 풍차랑 맞짱 뜬 사람 아녜요."


이렇게 돈키호테의 다채로운 기행담들을 한정 짓거나, 더러는 독자 연령대마저도 한정한다, 그거 동화잖아요. 사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제 26살이 됐고, 지금 참여 중인 독서토론 모임에서 <돈 키호테>를 발제 도서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세계 속에 '돈키호테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는 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돈 키호테는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무지한 상태로 인생을 허비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물론 원문 번역이 아닌 청소년용 200페이지 자리 남짓한 판본을 읽었다. 그 후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동안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거치고 군대와 기타 사회 모임들에 참석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저마다의 세계를 쓰며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올해 다시 한 <돈 키호테>는 자기 세계에 너무도 솔직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만큼 자기에게 솔직한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알고 보니 청목출판사 판 <돈 키호테>는 원본의 상편만을 번역했다는 아쉬움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바로 문학동네에서 나온 <돈 키호테> 상권 하권을 모두 주문했다. 오늘 내로 배송이 닿지 않을까 싶다.


여관 주인에게 기사작위를 받는 돈 키호테 (W.Crane 그림, 출처: en.Wahooart.com)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라는 미국 비평가는 <돈 키호테>를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 의견이 소개된 그의 논평을 읽어 보진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다음과 같은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이 점들은 또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중에 단 한 번의 휴식만을 허용하게 한 즐거운 요인이기도 하다.


첫째, 현실세계는 돈 키호테가 (가짜)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모두 그의 기사담에 편입된다. 비록 <롤랑의 노래>와 같은 기사담은 읽어 본 적이 없지만, 그런 소설들은 주말 드라마와 같이 대체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을까? 소설이 아무리 인생을 반영한 산물이라고 하지만 현실에는 '기승전결'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보자.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 두 남녀가 신혼여행 길에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현실에서는 누군가가 임의로 신혼부부가 기쁘게 웨딩카에 탑승하는 순간만을 결말로 만들고 현실을 마무리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예측 불허한 현실을 살아간다. 그런데 누군가 "내 인생 결말은 어차피 행복하게 돼 있다"는 믿음-또는 거의 신념-을 굳게 가지고 불행(으로 보이는 사건)들을 예정된 시련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보다 강인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돈 키호테> 이전 소설들은 현실세계와 인물의 세계가 동일하지만 <돈 키호테>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 점이 돈 키호테를 의지적 인간상으로 만든 기원일 것이다.


몽유병에 걸린 와중에 포도주 부대와 싸우는 돈 키호테 (W.Crane 그림)


둘째, 돈 키호테는 정말 미친 사람인가? 1장부터 서술자는 돈 키호테가 '이성이 완전히 마비되어 세상의 어떤 미치광이도 생각해 보지 못한 기이한 공상에 빠졌다'라고 썼다. 그런데 '기사도 정신'이라 명명한 것에 철저하게 따르는 돈 키호테는 11장에서 나름의 뚜렷한 세계관을 드러내며 말한다. 그가 꿈꾸는 '황금시대'는 모든 양식(糧食)이 다 공동소유이며 사치가 없고,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재화만 취하는 옛적의 욕심 없고 순박한 사회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이 과해지고 전쟁과 약탈을 자행하며 당시 취약 계층인 과부와 고아들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됐다. 현시대에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나타난 존재가 그가 자칭하는 편력기사라는 게 그의 요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약탈, 고아와 과부는 기사도가 사라지고 국가 상비군이 생긴 세르반테스의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수도승들의 고행 행렬을 귀부인을 납치한 악당들의 행렬로 오인하고 난장판을 만드는 돈 키호테는 다른 사람의 눈엔 사리분별 못하는 미치광이일 뿐이다. 하지만 돈 키호테 자신은 내적으로 일관된 신념을 행동에 옮겼을 따름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미치광이일까?


도로테아를 가상의 왕국 미코미콘의 공주로 착각하고 예를 표하는 돈 키호테 (W.Crane 그림)


셋째, 돈 키호테가 산초 빤자와 함께 여러 지역을 누비며 기행담을 쓰는 동안, 도중에 만난 인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는 곧 다른 인연을 불러들인다. 돈 키호테 일행이 협곡에서 만난 반 미치광이 카르테니오는 자신의 실연 사건을 돈 키호테 앞에 토로한다. 그리고 돈 키호테를 찾으러 간 신부와 이발사는 카르테니오의 연적과 약혼한 도로테아를 만나 또한 카르테니오의 얘기를 다른 시각에서 듣는다. 돈 키호테 일행이 신부 일행을 만난 뒤 함께 유숙하러 간 여인숙에서는, 도로테아의 약혼자 돈 페르난도와 카르테니오의 연인 루신다를 만나 앞서 소개된 연애 사건을 다시 그들 두 사람의 관점으로 듣는다. 비록 네 사람이 여인숙에서 해후한 일은 너무 우연에 기댄 감이 있지만,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은 17세기 초에 쓰인 소설임을 감안하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품 내 돈 키호테가 기행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카르테니오 등의 네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았을 것이기에, 돈키호테는 작중 인물 외에도 '작품 속 작자'라는 또 하나의 위상을 지닌다. 또한 한 사건에 대해 네 명의 진술이 합쳐지며 오해가 풀리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특이한 입체적 구성은, 문학사가 허니웰(A. Honeywell)이 그의 에세이 <근대 소설에서의 플롯(1968)>에서 언급한 '현실은 무수한 단편적 사실들의 합이며 따라서 비완결적이다'라는 20세기 이후 현대소설의 특징마저 엿볼 수 있게 한다.


... 하편을 읽지 않았으므로 작품 전체를 종합하여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빨리 하권이 배송되기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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