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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하린 Nov 17. 2020

땅콩과자

추운 날이었습니다. 밤하늘이 남색으로 짙어져가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당신의 포장마차는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 있습니다. 평소엔 바삐 움직이느라 스쳐 지나가던 광경이었으나 이 날따라 눈에 밟혔습니다. 당신은 이제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는 듯 팔다 남은 빵들을 종이봉투에 옮겨 담는 중이었습니다. 당신의 오른쪽에 두세 개의 종이봉투를 진열해놓았고, 빵 굽던 틀을 닫고는 비닐천을 꺼내 주섬주섬 동여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멀찍이 떨어져서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 서늘한 밤공기에 차가워진 머리로 봤던 아른거리는 전구빛,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의 천천한 움직임을 응시하는 건 제게 꽤나 큰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그 행복이 끊이지 않기를,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걸 의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마침 주머니에는 2천 원이 있었고, 당신은 3천 원의 빵 봉지를 ‘마감세일’이라며 2천 원에 주셨었. 식었지만 겉은 바삭하고 달콤한 맛. 쫀득하고 차진 맛. 땅콩이 아작하게 씹혔고 그 고소함에 살짝 물릴 때쯤 팥소가 들어간 호두과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땅콩과자가 뒤덮고 있어서 몰랐는데 호두과자도 꽤 많이 들었더군요. 풍부한 간식이다, 배도 마음도 풍부해지는 간식이다, 하며 버스를 탔습니다.

자리에 앉아 아른거리는 불빛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갈 당신의 인생을 상상하면서, 우린 이런 아름다움이 인정받고 있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구나. 많은 아름다움이 자본이란 이름 앞에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사실이 너무 서러워 버스 안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처음으로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슬펐던 건 나 역시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사회에 대한 죄책감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순간 나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벗어던졌습니다. 이타적인 동기는 쉽게 질리기 마련이기에.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라고 명분을 달리했습니다. 또한 허울뿐인 말만 내뱉어서는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자본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자본을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모순된 것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좋을 때라며 회상하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아, 그 시절의 나는 때가 타지 않은 채로 세상을 바라보았지.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도 먼지가 켜켜이 쌓여 세상을 보는 내 눈도 탁해져 버렸다.'

언젠가 언니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만약 사람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성숙이라면, 청소노동자와 CEO 간의 삶에 위계를 부여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지혜를 탐구하는 청소노동자, 그리고 쓰레기를 주우며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봤을 청소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직위만이 위대함을 부여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는 CEO가 있다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너무나 빛날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허나 우리는 그 모든 수식어를 지워버리고 직업 그 자체로 평가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회에 살아간다는 것은 자욱한 매연 속에 살아간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텁텁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이 날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너무 아픈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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