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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하린 Nov 26. 2020

이터널 선샤인

20살의 기록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 이 둘은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들의 첫 만남은 로맨틱하다기 보단 유쾌했다. 오렌지색 츄리닝을 입고 과즙이 톡톡 터지듯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클레멘타인. 그렇게 대놓고 어필하는 클레멘타인에 비해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조엘. 다른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은 점점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너무나 맞지 않는 그 성향 때문에 둘은 갈라서고 만다. 엄밀히 따지면 제멋대로에 너무나 자유분방한 클레멘타인의 행동 때문이지만.


조엘은 너무 사랑했지만 더는 사랑할 수 없는 클레멘타인을 잊기 위해 '아픈 기억을 지워주는 라쿠나 사'에 찾아간다. 허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마저 지워버리려고 하자 그는 저항한다. "이 기억만은 제발 남겨주세요.." 안간힘을 다해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려는 조엘.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다시금 기억을 되찾고,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


보는 내내 클레멘타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남의 자동차를 빌렸다가 고장내고, 'library'를 'liberry'라 말하는 그녀였지만 애틋한 감정을 한껏 내비치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맑아보였기 때문이다. 조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숫기 없고 낯 가리는 탓에 눈동자를 데록 데록 굴리는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달까. 둘 다 어설픔을 지니고 있는, 무언가 한 꺼풀 벗겨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어설픔을 가지고 사랑에 빠지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과연 나의 모자람을 드러내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나를 숨겨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등장하는 베로니카처럼.


이 책에선 그다지 싫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졌으며,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둘 줄 아는 여성 베로니카가 등장한다. 매력적인 모습에 멋있는 남성과의 잠자리도 여러 번 가졌지만 그녀는 한 번도 최대치의 쾌락에 도달해본 적이 없다. 오르가즘에 이르는 그 순간마저도 자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쾌락의 정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언제나 '크나큰 행복도, 아픔도 없는 삶'을 추구하던 그녀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건 고통과 아픔이 아니라 무관심, 무감각, 무미건조함이 아닐까? 그것이 어쩌면, 기억을 잃기보다 아파도 좋으니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려 했던 조엘의 부단한 노력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나 역시 한 꺼풀 벗겨진 사람이기에 더 나를 숨겨왔던 것 같다. 허나 이젠 어설퍼도 좋으니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말해왔던 모습에서 벗어나 좀 더 맑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마치 클레멘타인의 다양한 머리색이 드러냈던 것처럼, 다채로운 감각을 느끼고 발현하는 것. 정말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면 일단 나 자신의 모자란 부분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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