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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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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호 Dec 29. 2020

수어(手語)로 즐기는, 보이는 라디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즐길 수 있는 방송을 고민할 때

   고속버스 내부에 있는 텔레비전에 예능 프로그램이 음소거가 된 채 나오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문득 ‘청각 장애인들은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어진 뉴스에서는 수어 통역이 나왔다. 예능엔 없고, 몇몇 뉴스에만 있는 수어 통역. 그들은 보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즐기면서 보고 있을까? 청각 장애인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방송, 이런 방송을 춘천MBC <나이야가라 시즌3> (MBC 네트워크 특선)를 통해 그려볼 수 있었다.       


농인을 위한 보이는 라디오, ‘나이있수다(手多)’


   “별들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청인 중 별들의 소리를 상상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별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농인 중에는 움직이는 별들을 보며, 그 소리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세상의 소리를 궁금해 하는 농인들이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어차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라디오는 음량을 키웠을 때 손끝에 느껴지는 떨림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이야가라> 팀과 삼척농아인협회가 농인들이 라디오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보이는 라디오’를 기획했다. 

   ‘나이있수다’는 청인 위주로 제작된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달랐다. 프로그램 세트의 배너는 수어의 철자 격인 지(指)문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가수를 초청해 노래를 듣는 일반적인 오프닝 공연 대신 수어와 손동작을 기반으로 하는 그림자 공연으로 쇼를 시작했다.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 포맷을 활용해 방송을 진행하면서도 말소리는 없었다. 농인들의 사연을 소개할 때에도 오로지 수어, 표정, 눈빛으로만 적막을 채웠다. 

   비장애인 출연자 모두 익숙지 않은 수어로만 농인들과 소통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수어를 할 때 손바닥 방향을 자꾸 틀리게 보여준 탓에 ‘나이있수다’라는 멘트 하나를 7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가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서로 엉뚱한 대답을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인과 농인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프로그램을 꾸려갔다. 또 소통할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더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만들어 가는 방송, 이것이 ‘나이있수다’ 쇼의 묘미였다.      


엄연히 청각 장애인도 시청자이니까      


   삼척농아인협회 직원들이 <나이야가라>에 처음 찾아왔을 때, 출연자들은 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직원들이 멀뚱멀뚱 쳐다보자 출연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출연자들은 직원들에게 계속 ‘말’을 쏟아냈다. 직원들이 자신들을 농인이라고 밝히자, 몇몇 출연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서 “혹시 여기 통역사가 없나요?”라고 묻는 협회 회장, 그리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라고 난감해하는 한 출연자. 농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상황은 미디어 환경 곳곳에 얼마든지 있다. 

   한 인터뷰에서 고은미 수어 통역사는 청인 시청자들이 청각 장애인들을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했다. 그는 “수어 통역사의 손짓 때문에 정부 당국자의 브리핑 내용에 집중하기 어렵다. 폐쇄자막을 띄우면 되지 않느냐.”라는 비장애인의 항의를 더러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폐쇄자막은 글이기 때문에 어감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나이야가라>에 출연한 삼척농아인협회 직원들도 수어 통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정에서 장애를 숨기기 위해 학교를 보내지 않아 한글을 모르는 농인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폐쇄자막을 띄우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방송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것에서 출발한다. 농인에 대해 무지했던 <나이야가라> 팀도 매회 수어 쇼 (보이는 라디오)를 준비하면서 달라졌다. 소리를 내는 손뼉 박수 대신 눈으로 보이는 ‘반짝반짝 박수’를 쳤다. 그리고 농인들의 눈을 쳐다보며 말보다 수어로 인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제작진들은 수어 통역사와 농인들이 마주 볼 수 있게 자리를 배치했다. 농인들이 좀 더 편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끔 배려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장애인들의 문화가 묻어난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더 필요한 이유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또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방송사와 시청자 간 피드백을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모든 시청자가 소외감 없이, 쉽게 다양한 방송을 시청했을까? 수많은 교양·예능 프로그램 중 농인들이 직접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던가? 되돌아보면 나의 대답은 모두 “아니요.”인데, 그동안 나는 기울어진 미디어 환경에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방송 문화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나이야가라>의 수어 쇼, 이것이 시작이다. 앞으로도 장애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방송 문화를 가꿔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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