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주윤발은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주세요~!”
“어머, 웬일이야!” “헉!”
얼마 전 힙합 아이돌 위너의 멤버 강승윤이 최연소 가왕의 자리에 오른 뒤 가면을 벗자 판정단은 놀랐고 또 환호했다. 판정단과 시청자 모두 스웨그 넘치게 춤을 추며 그루브 있는 노래를 부르던 아이돌 강승윤이 거칠면서도 감성적인 록 발라드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주윤발일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강승윤은 가면 덕분에 아이돌 강승윤과 가왕 주윤발, 다른 장르를 소화하는 두 명의 가수로서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가면이 1차원적인 의미를 넘어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특히 그의 실제 성격과 다른,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할 때, 우리는 그것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따라서 방송 미디어 분야에서의 페르소나는 ‘시청자가 완전히 다르게 여기는, 방송인의 또 다른 캐릭터(부캐)’라고 간단히 정의해볼 수 있다. 이러한 페르소나는 <복면가왕>뿐 아니라 <놀면 뭐하니?>와 <나 혼자 산다>에서도 나타난다. 이 프로그램들이 페르소나를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찾아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해보면 시청자로서 프로그램을 좀 더 깊고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다.
먼저, <복면가왕>은 말 그대로 가면을 활용해 출연자의 부캐를 보여주고, 또 그 캐릭터를 극대화한다. 이런 방식은 다소 1차원적으로 보이긴 해도 그 어떤 방법보다 가장 명확하고 임팩트 있다. 가면을 이용해서 출연자의 원래 얼굴을 완벽히 가리는 데다 음성마저 변조하기 때문에 공개 전까지 시청자가 출연자의 원래 캐릭터를 직접 마주할 일이 없다. 이후 출연자가 가면을 벗으면 시청자는 본캐와 부캐의 차이를 확인하고 두 캐릭터를 완벽히 구분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선입견을 원천봉쇄하는 방식을 통해 출연자의 부캐는 더욱 활성화된다.
<놀면 뭐하니?>는 철저히 시청자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부캐를 활용한다. 유르페우스, 라섹, 유산슬 등 방송인 유재석의 부캐는 프로그램 속에서 아주 다양하다. 그가 매번 새로운 부캐로서 예상치 못한 분야에 도전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웃음 포인트가 된다. <놀면 뭐하니?>는 이제 단순히 유재석의 부캐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린다G, 비룡처럼 고정 출연자가 아닌 이들의 부캐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멀티 캐릭터 생산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처 포맷으로 아예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나 혼자 산다>는 앞서 다룬 프로그램들과 달리 가면을 지칭하는 말이든 예명이든 시청자가 직접 새로운 부캐를 명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출연자의 출근 후 모습과 퇴근 후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연예인 캐릭터와 인간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멋지게 화보를 찍고 내로라하는 무대에 서는 등 본업에 충실한 출연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가 가진 연예인에 대한 판타지는 유지하되, 인터뷰를 통해 인간 ○○○이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느끼는지도 보여주는 식이다.
고정된 이미지와 캐릭터 소진은 방송인에게 고질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한 방송인이 여러 캐릭터를 갖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시청자에게 부캐를 보여주는 방식이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캐릭터들에게는 방송인이 여태껏 드러내지 못했던 다양한 모습·매력을 분야나 능력에 상관없이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러한 멀티 캐릭터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는 시청자가 한 개인을 하나의 캐릭터로만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자신을 소위 가장 잘 팔리는 캐릭터에만 끼워 맞추려고 애쓰기보다 다양한 모습들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인 일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MBC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인과 시청자가 자신들 안에 존재하는 많은 캐릭터를 끄집어내어 그들의 욕구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곳이 되었다.